귀농귀촌 청년들이 모여 만든 청년마을 ‘고마워 할매’
할머니와 도시손녀, 만남으로 치유와 공감 서로 나눠
“요즘 시대에 필요한 감성 전하는 중심 역할 하고파”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어릴 적 살았던 고향에 대해서는 별 감정이 없었다. 아마 상황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사 다닌 것도 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서울. 누구나 꿈꾸는 ‘성공’이라는 길에 올라선 것 같았지만, 정작 생각과 다른 생활이 펼쳐졌다. 도움을 구하고자 주변에 속마음을 털어놨을 때 돌아온 말은 “난 네가 부럽다. 넌 돌아갈 곳(고향)이 있잖아. 뭐 하러 힘들게 서울에 사냐?”였다.

고향에서 내디딘 첫발
박세원 숲속언니들 대표는 주변으로부터 조언 아닌 조언을 들은 뒤 고향인 경상남도 함양군으로 향했다. 그리고 전통 장류 제조업을 하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역에는 국가에서 청년과 귀농귀촌인들을 위해 준비한 다양한 교육이 있었다. 박 대표는 교육에 참여하며 ‘농업’에 주목했다. 특히 농부들 노력의 결과물이 제값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알게 된 그는 “농산물에 가치를 더해 제값을 받는 문화를 만들자”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삼삼오오 함께 교육받으며 공감대를 형성한 이들이 모여 ‘숲속언니들’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보자는 다짐으로 뗀 첫발이었다.
 

박세원 숲속언니들 대표, 김승현 숲속언니들 홍보팀장.
박세원 숲속언니들 대표, 김승현 숲속언니들 홍보팀장.

도손이와 할머니가 만드는 환상의 케미
‘숲속언니들’은 ‘할머니’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 박 대표가 어머니를 도와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일을 했을 때 경험한 칭찬과 위로, 공감이 청년마을의 바탕이 된 것이다.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들을 받으면서 ‘세대가 달라도 친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느낌을 공유하고픈 친구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프로그램으로 만들게 됐어요.”

이러한 박 대표의 생각은 적중했다. ‘할머니와의 추억’을 경험했던, 또는 경험하고자 하는 이들은 숲속언니들 SNS(블로그·유튜브·인스타그램)를 통해 함양을 찾아왔다. 그렇게 시작된 ‘고마워 할매’는 함양군 지역 원주민인 할머니들과 도시에서 온 손녀(이하 도손이)들에게 어울림과 교류,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제공한다. 규모도 10인 이내 소그룹으로 진행해 오순도순함을 극대화한다.

찾는 사람이 많으면 무조건 좋은 게 아닐까 싶은 찰나, 박 대표가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귀여운 이유를 전한다. “숙소가 협소해요. 10인이 머물 수는 있지만, 그러면 너무 답답하거든요.”

이곳에서 도손이들은 할머니들을 통해 치유 받고, 또 ‘서울에서의 삶이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는 숲속언니들의 메시지에 공감한다. 할머니들 역시 도손이들을 만나고 나면 “고맙다. 오랜만에 웃으며 지냈다”, “내가 이거 누리려고 지금껏 산 것 같다”며 세대 간 소통으로 얻은 활력에 고마워한다.
 

나를 위해 준비된 듯 했던 시골 살이
‘고마워 할매’를 통해 시골생활을 본격 시작한 이들도 있다. 숲속언니들에서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김승현 홍보팀장도 ‘고마워 할매’를 찾아왔다가 그대로 눌러앉은 이 중 하나다. “마치 누가 설계해 놓은 듯, 운명적 만남 같아요”라는 말로 시골생활 이야기를 꺼내는 김 팀장. 인천 출신인 그는 전 직장에서 귀농귀촌인들을 자주 만났고, 그러면서 막연하게 ‘나도 시골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당시 ‘마흔 살쯤 되면 시골에서 살아봐야지’ 했던 생각이 ‘고마워 할매’를 알게 되면서 구체화 됐다.

할머니도 좋아하고 시골살이에도 관심이 있던 그에게 ‘고마워 할매’는 자신을 위해 준비된 밥상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시작한 2주 살이를 통해 예감은 확신으로 변했고, 한번 더 2주를 지낼 수 있다는 말에 계속 머물며 당시 활동프로그램이던 <주간함양> 인턴 기자 활동도 했다. “마침 대표님이 장사를 해보지 않겠냐고 해서 팝업식당 한 달까지, 총 두 달을 지내며 시골살이에 완전히 정착하게 됐어요.”
 

시대에 필요한 감성 전하고파
숲속언니들 활동이 자리를 잡으면서 이들의 작은 움직임은 생각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 6월 프로젝트를 마치고 발표회를 하던 자리, 할머니 한 분이 오지 않아 집에 찾아갔더니 집에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조치가 잘 돼 할머니는 회복했지만, 박 대표는 그날을 떠올리면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그날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할머니를 챙길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이게(독거노인 응급상황) 막연하고 먼 거리에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게 와닿았다”는 것이다

이외에 올해 11월 10~19일에는 ‘핫’한 서울 성수동에 팝업스토어도 진행했다. 팝업스토어는 함양의 명물 곶감 만들기 체험과 고마워 할매팀의 두부 만들기 키트, 할머니가 제작한 굿즈 판매 및 전시 등이 이뤄졌고, 마을을 그대로 옮긴 듯한 인테리어에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세대까지 온 가족이 방문해 추억과 재미를 나눴다. 박 대표는 “실제 방문하신 분 중에는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흘린 분도 있고, 이런 감성이 요즘 시대에 필요하다는 소감을 들었을 때는 ‘우리가 (이런 감성을 전하는) 역할의 중심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지역을 진짜 사랑하는 마음’ 있어야
사실 시골살이는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농사는 대자연에 순응하는 법을 배우는 길이지만, 외부인이 시골에 적응하는 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젊은이들이 마을에 우르르 들어와 뭔가를 한다며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도, 이곳저곳 사진을 찍고 다니는 것도, ‘고마워 할매’에 참여를 권하는 것도 불편해하며 따지는 어르신들도 물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젊은이들은 농촌에 내려와 어려움을 돌파하며 새 길을 만들고 있다. 그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 대표가 말한다. “청년마을이라는 사업을 하더라도, 여기에는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좋은 면, 밝은 면만 보고 해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역을 살려야겠다는 ‘진심’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에요.”
 

[2023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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