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관 교도
여도관 교도

[원불교신문=여도관 교도] 요즘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통상 어떠한 정치적 견해에 대해서는 엇갈린 입장이 있기 마련인데, 진보 보수 너나 할 것 없이 ‘민주주의 위기론’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물론 상대 진영을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하고, 반대파가 만들어낸 ‘가짜뉴스’가 민주주의를 죽이는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뉴스를 읽으며 정치와 사회문제를 인식하고, 공통된 관심사를 확인해 연대하며, 유용한 생활정보를 습득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 하지만 가짜뉴스는 증오와 혐오를 조장해 사회를 분열시키고 정보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떨어뜨려 유용한 정보와 쓸모없는 정보를 구분하기 어렵게 만든다. 가짜뉴스로 상처받은 사회를 복원하는 데에는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요구된다. 

21세기 들어 디지털 혁명이 시작되자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통해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룩될 것이라는 믿음이 싹텄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선거운동 기법은 노무현이나 오바마 같은 변방의 정치인을 일약 대통령으로 끌어 올렸고, 2010년경 알제리, 요르단, 이집트, 리비아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온 민주화의 바람 ‘아랍의 봄’은 디지털 문명의 정치적 파급력을 보여줬다. 아랍 민중들은 스마트폰과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를 이용해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고, 민주화 의식을 고취시키며 거대한 시민 저항을 이끌어냈고 튀니지, 이집트, 예멘에서는 정권교체까지 이뤄냈다.

디지털 혁명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낙관을 이끌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론과 비관론이 고개를 들었다. 각종 소셜미디어와 유튜브의 영향력이 커지며 어그로(대중의 관심을 받기위해 분란을 일으키는 행위)를 끌기 위해 많은 가짜정보가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다양한 유통경로를 통해 엄청난 속도로 확산된 것이다. 

거기에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인지로는 판별 불가능할 정도로 사실을 조작하거나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주작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AI는 특정 인물의 몇 마디의 목소리와 몇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그를 범죄현장 CCTV에 등장시킬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가짜뉴스는 
수양, 연구, 취사로 
부단히 연마한 공부인만 
극복할 수 있다.

인간의 생존은 환경으로부터 수집한 정보의 정확성에 달렸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어디로 가야 추위를 피하고 안전하게 식량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떤 것이 독초이고 약초인지, 낙뢰가 내리치면 어디로 피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했다. 위험에 닥쳤을 때 내가 알고 있는 정보에 한 치의 어긋남만 있어도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과학을 탐구하고 거짓을 판별해 내는 인지능력을 키워왔다. 

공동체의 운명도 이와 같다. 유통되는 정보의 진실성과 유용성이 공동체의 건강과 안녕을 좌우한다. 지금 가짜뉴스는 공동체의 존립 기반을 흔드는 심각한 사회문제지만 가짜뉴스를 잡겠다고 공권력을 동원해 무분별하게 정보유통을 막아서는 안 된다. 정보는 다양해야 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유통할 수 있어야 한다. 

2017년 교수협의회에서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었다. 사악함을 깨뜨려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이다. 인간은 경험에 의한 확증 편향이나 자신이 평소 바랐던 상황전개 방향으로 정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악은 인간의 그런 성정을 이용해 편견을 조장하고 갈등을 키워 이득을 취한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유전적으로 각인되고 삶의 경험으로 강고화 된 분별심과 주착심을 극복하고 청정한 마음을 증득해 진리를 대하기 위함이다. 이제 진실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진실은 수양, 연구, 취사로 부단히 연마한 공부인 앞에만 참모습을 드러낸다.

/강남교당

[2023년 11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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