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광일)
윤덕균(광일)

일원 74상(이응 상): 한글 이응(ㅇ)에는 진공묘유의 의미가 있다. 

신기하게도 동북아 국가 중 자모에 동그라미를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글의 자모음 중에서 일원상의 모양을 갖는 것이 바로 이응(이하 ㅇ)이다. 

일원상과 연관하여 ‘ㅇ’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ㅇ’이 국어에서 음절의 첫소리로 날 때는 음절의 구별을 표시할 뿐 음가가 없다. 그러나 받침으로 쓰일 때는 혀뿌리를 높여 연구개(軟口蓋)의 목젖이 있는 데를 막고 콧구멍 안을 울리어 [ŋ]의 소리를 낸다. 그러므로 받침으로 쓰일 때의 ‘ㅇ’을 발음 기관 상으로 보면 혀뿌리소리, 곧 설근음 또는 여린입천장소리, 곧 연구개음이 된다. 발음상으로는 콧소리, 곧 비음이 된다. 

훈민정음 첫소리 체계로 보면 ‘ㅇ’은 맑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은 불청불탁의 목구멍소리 후음이다. 그 제자원리는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고 한다. 같은 후음 계열의 ‘ㆆ’이나 ‘ㅎ’은 ‘ㅇ’에 획을 더하여 만들었는데, ‘ㅇ’은 이러한 후음들에 비해 그 소리가 거세지 않기 때문에 제자 상의 시초가 되는 글자다.

또 종성의 ‘ㅇ’[ŋ]은 주로 시가 등에서 행동의 반복을 뜻하면서 성조를 부드럽게 하는 접미형태소로 쓰이기도 한다(예를 들면 청산별곡의 ‘멀위랑 달애랑 먹고’, ‘이링공 뎌링공 야’ 등). ‘ㅇ’은 국어의 자음 가운데 혀뿌리를 연구개에 대어 숨길을 막고 날숨을 코안으로 내보내며 목청을 울리게 하여 나는 유성연구개비음을 표기하는 데 쓰인다.

‘ㅇ’은 모양도 일원상을 완전히 닮았지만 속성에서도 일원상과 유사점이 많다. 음절에서 첫소리로 쓰일 때는 음가가 없으면서 모양을 갖추게 하는 진공의 의미가 있고, 종성으로 쓰일 때는 혀뿌리소리로 제자상의 시초가 되는 글자의 속성을 갖는 것이다. ‘ㅇ’은 글자 중에서 진공묘유의 의미를 간직한 ‘글자 중의 글자’다. 
 

‘ㅇ’은 
진공묘유의 의미를 간직한
 ‘글자 중의 글자’다.

일원 75상(일원미학 상): 석굴암은 일원미학의 극치다.

석굴암은 1995년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된 한국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존 카터 고벨은 그의 저서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아>를 통해 “석굴암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심미적으로 통합된 전체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영일 포항공과대학 교수는 <‘석굴암’ 불교예술 ‘조화·균형’ 극치>를 통해 일본인 요네다의 측량을 예로 들면서 석굴암의 수학적, 비례적 미학을 설명했다. 석굴암은 16개 벽면으로 원형의 석실을 만들었다. 본존불은 머리-가슴-어깨-무릎 폭의 비율이 1-2-3-4로 정확한 비례를 보이는데, 이를 통해 안정감과 균형을 높였다는 것이다.
 

“1932년 일본의 요네다 미요지는 최초로 석굴암을 정밀 측량했다. 요네다가 작성한 본존불의 측량도면을 보면 석굴암은 12당척(1당척은 29.7㎝)을 기본으로 정사각형과 그 대각선의 연속으로 설계됐다. 입면의 경우 주실 반구형도 12자를 반지름으로 삼았다. 본존불의 좌대 밑에서부터 본존불 머리끝까지의 길이가 12자의 배수로 되어있고, 본존불 위 반구형의 반지름도 12자다. 이로써 석굴암의 수직적 원형구조를 만든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이 1:1.618의 황금률로 설계되어 있는 반면 석굴암 설계는 1:1.414로 구성되어 있다.” 

석굴암의 수평적 원형구조는 미학의 극치다. 석굴암 평면도는 12당척을 배율로 갖는 세 종류의 원으로 구성된다. 직경이 48당척인 큰 원 안에 전실-비도-주실이 모두 배치된다. 직경이 48당척인 큰 원 속에는 24당척인 중간 원형 둘로 나눠 하나에 본존불이 있는 주실을 배치하고 나머지 하나에 전실과 비도를 배치한다. 여기에 직경이 12당척인 원 여덟 개를 그려 넣으면 석굴암의 독특한 수평적 원형 구도가 완성된다. 이는 신라인들이 원주율(파이·π=3.141592…)을 서양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증거다. 세계적인 일원 미학의 극치가 바로 석굴암에서 재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중곡교당

[2023년 1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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