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호 교무
현상호 교무

[원불교신문=현상호 교무] 어느덧 올해 달력이 한 장 밖에 남아 있지 않았음을 보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과는 달리 하와이는 두 계절만 있는데, 더운 계절과 더 더운 계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렇듯 날씨가 변동이 심하지 않는 하와이에서는 시간의 변화를 실감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오히려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변동이 없는 날씨로 인해 어느  곳보다도 세월의 무상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이곳 하와이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14년이 되었다. 긴 시간인 것 같지만 뒤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순간적으로 스치고 지난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래서 순간순간 마음을 챙기지 않으면 놓치고 살기가 쉬워서 항상 캘린더식 일기장을 분신처럼 들고 다니면서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살고 있다. 

나의 일상을 기록한 원기108년(2023) 일기장을 보면서 그동안 많은 분들에게 은혜를 받고 살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인연들 속에는 가족만큼이나 오래된 인연도 있고 올해 처음 만난 새로운 인연도 있었다. 서양 속담에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될수록 좋다 (Old friends and old wine are best)’는 말이 있다. 오래된 인연들을 만나면 우리는 그 옛날 시절로 돌아가서 즐거운 추억을 회상하며 웃음꽃을 피울 수가 있어서 좋다. 오래되고 깊은 인연 속에서 나오는 ‘맛’과 ‘향기’는 어느 음식보다도 귀한 것이다. 그래서 ‘옷은 새 것이 좋고 친구는 옛 친구가 좋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New wine is poured into fresh wineskins)’는 말도 있다. 새 술을 오래된 가죽 부대에 담으면 발효가 되어 터져 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새로운 인연을 만나서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극을 받는 것도 삶 속에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본다.

원기107년(2022) 8월에 시작한 ‘알로하 하와이’연재를 이번 글을 끝으로 마무리를 한다. 매달 새로운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 달 동안 준비하면서 보낸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글로 나오는 것을 경험했다. 16번의 경험을 하게 해 준 원불교신문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이 글로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기를 바란다.

아무리 오랜 기간 숙성된 포도주도 새 포도주가 없으면 만들 수 없듯, 아무리 오래된 친구도 새로운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면 있을 수 없다. 올해 만난 새로운 인연들이 모두 성불 제중의 인연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정산종사께서 “복 중에는 인연 복이 제일이요, 인연 중에는 불연이 제일이니라”고 하셨다. 하루하루 새롭게 만나는 인연들마다 불공의 시간을 가지면서 숙성된 포도주처럼 먼 훗날 깊은 맛과 향기를 느끼는 인연들이 되기를, 그리고 그 인연들이 모두 진급하여 성인이 되고 부처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무상한 시간 속에서도 오랜 인연들과 새로운 인연들을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올 한 해가 풍성했다. 전생의 오랜 인연이 이번 생의 새 인연이 되고 이번 생의 새 인연이 다시 후생의 오랜 인연이 되는 이치를 깨닫고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순간에 있음을 자각해 일대사 인연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동안 ‘알로하 하와이’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알로하!

/하와이국제훈련원

[2023년 1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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