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원 교도
이준원 교도

[원불교신문=이준원 소장] 법연은 민들레와 같다. 아기 씨앗을 품는다. 신심과 공심, 공부심의 법종자 씨앗이 영글어 인연 바람을 타고 교단의 텃밭을 일군다. ‘샘 → 시내 → 강 → 바다’로 가는 인연 이어가기의 여정이다. 지난 108년간 출가와 재가 일심합력, 절약절식, 이소성대의 정신으로 교단의 경제적·정신적 기초를 다져 나와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교단 창건 당초부터 신성일관(信誠一貫) 하는 집안들이 있다. 밀양 박씨, 야성 송씨,광산 김씨를 비롯하여 연안 이씨, 신흥(함평) 이씨, 홈실(죽산) 박씨 가문 등등이다. 일원회상의 주춧돌과 밑돌 같은 집안이다. 끊임없이 3대를 이어가며 자손들이 전무출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신흥 이씨 선진님 중 만난 분은 범산 이공전 종사다. 1978년 여름 하섬에서 뵈었다. 많은 대화는 나누지 않았지만, 당시의 장면은 기억에 생생하다. 얼마 전부터 가문의 혈연법연 인연교화의 법맥을 귀동냥으로 정리하다 보니, 연안 이씨와 더불어 교단의 양대 법맥을 이룬 신흥 이씨 가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일산 이재철, 도산 이동안, 응산 이완철, 범산 이공전, 예산 이철행, 고산 이운권, 한산 이은석 등 신흥 이씨 선진들의 혈연법연이 연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인재와 재물을 품고 키우는 법맥이었다.

“우리의 일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난관이 남달리 많지만, 참고 견디어 나아가면 반드시 성공할 날이 있다.” 일산 이재철 선진의 말씀이다. 소태산과 같은 해에 출생하고 같은 해 열반하셨다. 외유내강의 성품으로 ‘봉사가 만져봐도 양반’이라 할 정도의 인품이었다. 이동안 선진의 팔촌 형이다. 

현재 교단의 살림살이가 어렵다 보니, 이동안 선진의 삶에 마음이 갔다. 의식주와 삼학공부를 병행하는 것이 육대요령이 아닌가? “나는 공부통은 아니나 사업통이다”고 자부하신 이동안 선진은 1892년 신흥마을에서 태어났다. 수신조합(守信組合)을 만들어 교단 경제자립에 기여했다. 농업부장과 상조부장, 보화당 대표이사와 산업부장 등을 역임하며 교단의 산업계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41년 이동안 선진이 열반하자, 눈물을 흘리신 소태산의 심정은 <대종경> 실시품 33장에서 엿보인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기도 힘들지만, 가풍을 이어가기는 더 힘들다. 선대의 후광과 그늘에서 벗어나 청출어람 되어야 명문가로 자리 잡는다. 결복교운의 조건 중 하나다.

/솔로몬연구소

[2023년 1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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