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100년 역사에 코로나19 팬데믹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돌입하면서 친구가 멀어지고 이웃이 멀어지고 또 종교마저 멀어지는 원인이 됐다. 그렇게 2년의 팬데믹 기간을 보내고, 다시 일상회복을 위해 애쓴 2년의 기간이 지나고 있지만 종교계는 좀체 이전으로의 복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원불교 교단에서는 코로나19 2년의 기간을 스스로를 돌아보고 공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지만 혼자 하는 공부는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또 다시 맞이한 2년의 기간을 교단혁신이라는 기대 반 걱정 반의 핫이슈로 출발했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안타까운 것은, ‘멈출 수 없고’ ‘멈춰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과제를 놓쳤다는 점이다. ‘공부’가 그렇고 ‘교화’가 그렇다. 개인 개인이 암울한 시기를 공부의 기회로 알고 용맹정진하면 다행이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우리 어리석은 중생’이기에 불신 탐욕 나태 우치에 빠지기가 훨씬 쉬운 동물속성을 가졌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그 시간은 허송세월이 됨으로 인해, 재가교도는 출가교도를 불신하고 출가교도는 교단을 원망하는 병폐가 남 탓으로 도졌다.

‘개인의 공부를 교단이 어찌 하랴’ 방기하는 잘못이 연장되어서는 안 된다. 돌아보면, 공부도 환경과 분위기를 따르니 지금이라도 ‘공부하는 풍토’를 만들지 못한다면 출가는 제 자리에 서기가 힘들 것이고 재가는 불신을 털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교단 초창기 선진들이 좋아했던 ‘학인(學人)’ 혹은 ‘공부인’이란 말을 다시 회복시키는 게 급선무다. 재가출가 공부인을 양성하기 위해 교단이 물샐 틈 없는 제도를 만들 때 미래가 있다.

또한 교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놓칠 수 없는 사명’이다. 대규모 인사를 앞두고 있어서, 혹은 선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했다며 교화를 뒷전으로 미룬 결과가 현재 교화침체의 비롯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종법사가, 교정원장이, 교구장이, 교당 교무가 바뀌기에 1년이란 세월을 허투루 보낸다면 이만큼 어리석은 핑계도 없다. 그럼에도 지난 4년, 곧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또 혁신이 시급한 과제라는 이유로 교화정책에 어벌쩡했다면 크게 반성할 일이다.

내년은 교단 제4대의 문이 열리는 해이다. 그럼에도 각종 선거와 이에 따른 전무출신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예상되기에 마음잡기가 쉽지 않은 해이다. 그래서 내년 교화정책을 세우기도 곤란하고, 공부심을 잡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교단이 아무리 혼란스럽고 과도기라 하더라도 ‘공부’와 ‘교화’에 대한 정책은 끊임없이 권장되고 제시돼야 한다.

공부와 교화는 사람 따라 변하는 정책이 아니라, ‘교단의 흔들리지 않는 사명’임을 명심하자.

[2023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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