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덕 교도
권오덕 교도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10년 넘게 해오던 사업의 부도. 세상을 향한 원망과 증오가 마음에 가득 차오르니 잠도 오지 않고 밥 한 술도 넘어가지 않았다. 마음이 다치고 나니 몸도 함께 피폐해졌다. 권오덕 교도(기흥교당)의 이야기다. 

2000년 이전 중국에서 귀금속 사업을 했던 그는 사업실패를 겪으며 우울증을 앓게 됐다. “생계를 위해 물류센터에 다니면서 담배를 하루 두 갑 이상 피웠던 것 같아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죠.” 아내와 딸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버텨내던 그에게 어느날, 당시 살던 아파트 이웃으로 있던 이법황 교도(수원교당)가 친구처럼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원불교 교리에 대해 알려줬다. 

덕분에 종교를 갖기에 늦다면 늦은나이, 그는 어린 아이가 학교에 가듯 교당에 나가고, 수업을 듣는 것처럼 설법을 듣게 됐다. “원불교 공부를 하기 전에는 와닿지 않던 일상의 ‘감사’가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줬어요.” 그렇게 이 교도를 따라 나가기 시작한 기흥교당에서 그는 가족같은 분위기에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받았고, 도반들과 함께하는 정전공부로 삶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불교는 늘 권 교도가 삶의 절벽으로 향할 때마다 그를 돌려세웠다. “코로나19가 가장 기승을 부리던 때 어머니가 폐혈증으로 갑작스레 열반하셨어요.” 전염병에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 응급상황에 119를 불렀지만 기다리는 데만 1시간이 넘으면서 어머니는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더군다나 전염병 예방 수칙을 따라야 했던 시기라 임종 때도 그는 어머니의 손 한 번 잡아드리지 못한 채 더욱 가슴을 쳐야만 했다. “하지만 기흥교당에서 천도재를 지내면서 읽고 또 읽었던 천도법문으로‘마음자리는 착으로 채우는 게 아니구나’를 깨닫게 됐어요.” 여전히 어머니의 부재는 가슴이 뻥 뚫린 듯 공허하지만 원불교 공부를 하며 그는 다시 한번 ‘슬픔을 헤쳐나갈 힘’을 얻는다. 

권 교도 역시 아직도 기쁨에 주착하고 슬픔에 동요한다. 그래도 이제는 그 마음에 대해 직시하고 분별하는 능력이 생겼다. “사실 원불교를 모를 때는 ‘원망심을 떨쳐내는 공부’는 성인군자들이나 하는 것으로만 알았어요. 원불교 공부는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구나’를 알게 해준 공부예요.” 

이제 그는 공부의 힘을 가족과, 주변 지인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의 마음자리에는 ‘감사의 가치’가 가득하다. 

[2023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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