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장지해 기자] ‘단출’하게 혼자 찾아온 것이 기특하다고 했다. 그러니 이모가 조카를 챙기듯 하게 된다고 했다. 

마주 앉아 도란도란, 삶은 계란도 까먹고 꽃차도 우려 마시고 귤도 먹었다. 수도회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잠옷도 한 벌 선물 받았다. 이만큼 (걸어) 나온 김에 혹시 외상값이 있는지 확인하자고 해 꽃집에도 들렀다. 혼자 보기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은행나무가 있다며, 60년 이상 한 자리를 지키는 샛노란 잎이 주렁주렁한 은행나무 아래를 거닐고 사진도 남겼다. 이 모든 게 인터뷰 시작 전 이뤄졌다.

그렇게 나란히 걷다가, 의자가 있으면 앉고 차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격식 없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저절로 인터뷰가 됐다. 대화는 공항, 택시, 서점 등 그가 발길 닿은 곳에서 이뤄진 ‘길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이해인 수녀는 그들의 사연은 물론이고 이름까지 하나하나 모두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 식물, 사진, 편지, 그리고 시… 그와 인연 된 모든 것에는 허투루가 없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름이며 직업까지 여전히 기억하시네요.
“길에서의 만남에 얽힌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모으면 책 한 권은 쓸 정도죠. 어딜 가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보니 숨을 수가 없고(웃음), 어느 순간 사인받고 사진 찍으려고 줄이 생겨요. 이제는 부탁받으면 부탁받는 대로 거의 응해주려고 하죠.”

누군가 사인이나 사진 등을 부탁하면 대부분 응하다 보니, 그 사이 그를 알아본 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줄을 서면서 본의 아니게 사인회가 펼쳐지는 경우가 잦다. 귀찮거나 힘들지는 않을까. 질문을 건넸더니 “종교인은 보통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말이 돌아온다. 수도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60여 년. 이제는 처음 본 사람이라도 일가친척 같고, 까칠하고 예민했던 마음은 보름달처럼 둥글둥글해졌다. 그는 이를 ‘수도생활이 주는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해인글방의 분위기가 다정하고 따뜻해서 좋습니다.
“해인글방은 문서선교가 이뤄지는 공간으로, 이곳이 하는 위로와 역할이 있어요. 40년 이상 모은 편지들도 있고, 나의 오랜 세월의 기록들도 있고, 많은 사람이 오간 흔적도 있죠. 교무님도 가기 전에 방명록 남기세요.”
문서선교. 낯선 그 말의 의미를 짚어본다. 1970년 ‘하늘’이라는 동시로 등단한 이 수녀는 이후 전국 각지에서 팬레터를 비롯, 삶에 대한 고민과 걱정 등이 담긴 편지를 받는다. 당시 다른 소임을 맡고 있던 그는 어느 날 총회에서 ‘문서선교에 대한 제언’을 한다. ‘예수님을 믿으라고 일부러 사람을 찾아가기도 하는데, 오는 편지에 답장을 짧게라도 해준다면 자살하려던 젊은이가 다시 마음 잡고 살아갈 수도 있고, 파급 효과가 클 것이다. 그런 위로의 몫을 하고 싶다. 하지만 업무가 너무 벅차다. 허락해 준다면 별도의 공간에서 문서선교 소임으로 역할 하고 싶다.’ 그렇게 수도회 내 최초로 문서선교 소임이 생겨났다.

올 가을, 신간 시집 〈이해인의 햇빛 일기〉가 발간됐는데요. 책에 붙은 부제가 인상적입니다.
“‘작은 위로가 필요한 아픈 이들을 위하여’라는 부제는 내가 붙였어요. 삶을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시대는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너나 할 것 없이 다 서로를 가엾이 여기는 작은 위로가 필요하구나. 그리고 몸이나 마음이나 둘 중 하나는 조금씩 다 아프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책에 ‘햇빛 주사’라는 시가 있는데, 사람들이 그 시를 보고 다짐의 문자나 편지를 보내요. ‘수녀님, 오늘 하루도 햇빛 주사 잘 맞았습니다’, ‘오늘도 둥근 사랑을 시작하려고 마음을 다지는 중입니다’ 하고요. 이 시대 원로로서, 시인으로서 쌓아온 세월만큼 무게와 영향력이 있음을 실감하죠. 덕분에 나도 나의 마음 관리를 잘해야겠구나 하고 다짐해요.”

암 투병 중에도 글을 쓰셨고, 수녀님의 글로 위로와 희망을 얻은 사람이 많습니다. 수녀님의 삶에서 ‘시’와 ‘글’은 어떤 의미일까요.
“마음의 일기나 편지 같은 거죠. 시나 문학은 수도원에 사는 동안 어느 땐 혼자만의 고백이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대신해 바치는 기도였을 것이고,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고백서나 일기였을 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형태로, 문학은 하나의 러브레터 같은 역할을 한 거죠.”

철저히 종교인임에도 일상에서 소재를 발견하고, 일상의 언어로 글을 쓰시는데요.
“센스를 키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열심히 보고 모르는 단어나 사물, 식물이 있으면 공부도 해요. 또 감각이 무뎌지지 않도록 하루에 단 몇 줄이라도 꼭 메모하고요. 피아노 치는 사람은 피아노를 계속 쳐야 손끝이 무뎌지지 않잖아요. 언어에 대한 감각도 마찬가지예요. 길들이는 연습이 필요해요.”

이 수녀의 언어에 대한 감각은 누군가를 만날 때 그대로 감동이 된다. 목사를 만나면 그에게 맞는 단어를 쓰고, 스님이나 불자들을 만나면 ‘도량’, ‘공양’ 등과 같은 그들의 언어를 써주는 것. 한두 단어만으로도 친밀감을 극대화하니, 얼마나 가성비 높은 선교 비결인가.

종교와 종교인,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종교가 할 일은 끊임없이 위로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거예요. 우리 각자가, 한 사람이라도, 누구를 탓하지 말고 ‘나부터, 지금부터, 여기부터’ 깨어나서 ‘도에 이르는 덕을 한번 닦아보리라’ 하는 각오로 ‘사랑의 어리석음’을 실천해야 해요. 전혀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라도 죽을 수 있는 용기, 그게 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사명감이라 생각해요. 내가 사는 지방의 신문이라도 열심히 보면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만나 고민을 듣다 보면,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살아가기 쉬운 우리에게 자극이 돼요. 사랑은 낭만과 꿈에만 머무는 게 아니고,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해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차를 타면 종착역이 있듯, 우리도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어요. 순례자, 나그네로 살아가는 데 기왕이면 한 번밖에 없는 내 삶의 주인이 돼야죠. 세상의 빛이 되고 롤모델이 될 ‘그 어떤 사람’이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면 좋겠어요. 일상의 평범한 곳에서 비범한 기쁨을 발견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해요. 조금만 더 남을 배려하고 사랑하면서, ‘나’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면 행복이 있어요.”

헤어질 무렵, 이 수녀는 “다음에는 하룻 밤 자면서 기도도 같이 하고 식사도 같이 하자”고 했다. 이날, 즐비한 장독대를 보여주며 이 수녀가 읊어준 시가 있었다. “나는 수녀로, 교무님은 교무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인의 삶은 마치 장독대에서 익어가는 장과 같다”면서.

 

장독대에서

움직이지 않고서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우리 집 항아리들

우리와 함께 
바다를 내다보고 
종소리를 들으며
삶의 시를 쓰는 항아리들 

간장을 뜨면서
침묵의 세월이 키워준 
겸손을 배우고

고추장을 뜨면서 
맵게 깨어 있는 지혜와 
기쁨을 배우고

된장을 뜨면서 
냄새나는 기다림 속에 
잘 익은 평화를 배우네

마음이 무겁고 
삶이 아프거든 
우리 집 장독대로 
오실래요?

[2023년 12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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