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5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생생한 1973년 어느 여름의 길 위. 아들을 임신했을 시기라 배는 불렀고 손에는 방문판매로 팔 화장품을 들고 있었다. 원불교의 ‘원’자도 모르던 그는 길 위에서 우연히 검은 치마를 입고 머리를 쪽 진 사람을 처음 만났다.

“친정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법문을 즐겨 말해주셨는데 처음 만난 ‘여자’가 마치 아버지처럼 법문을 들려주시길래 ‘우리 아버지가 환생 해 다시 오셨나’ 생각했던 기억이 나요.” 조정인 교도(궁동교당)는 그렇게 서위진 교무와 원불교를 만났다.

처음에는 무당집인 줄 알았던 교당을 어느새 ‘마음 속 친정’으로 삼아버리게 된 그는 그날부터 일요일마다 교당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 설법을 듣고 ‘이렇게 좋은 법 누구나 다 알았으면 좋겠다’ 싶었던 그는 어디서 누굴 만나든 들은 설법 내용을 말하고 다녔다. “그 기쁨을 누가 알까요. 새벽 4시 30분, 아기가 자고 있으면 슬그머니 집에서 나와 좌선을 하고 다시 뛰어서 집에 갔던 시절이었지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교당’에 가면 있었다.

그 기쁨은 경계를 맞닥뜨렸을 때에도 바래지 않았다. 서울로 상경해 C형 간염, 위암 등으로 힘든 투병 생활을 겪어야 했던 시절, 차를 3~4번씩 갈아타고 병원에 외래진료를 받으러 다닐 때의 일이다. “주사를 맞고 균이 몸속에서 싸우느라 컵을 들지도 못할만큼 힘든 생활이었지만 좌선을 하면 샘이 솟듯 힘이 났어요.” 그리고 그 힘은 그를 1년 만에 병석을 털고 일어나게 했다. 의사가 놀라 비결을 물어볼 정도였다. “좌선이라고 대답하면 못 알아들을까봐 ‘명상’이라고 했어요(웃음).” 그는 병을 판정 받을 때에도 겁을 내지 않았다. ‘사은님이 뜻대로 해주시겠지’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무섭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느덧 일흔이 넘은 나이, 그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가 돌보는 환자의 나이는 그와 불과 1살 차이. 조 교도는 그 차이가 ‘감사할 줄 아는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어긋장 내는 마음은 반드시 병이 나요. ‘감사할 줄 아는 기도’를 할 줄 알아야 오래 오래 건강하죠.” 

그는 요양보호를 위해 누군가의 집을 방문할 때 사과든 배든 ‘과일 하나’를 꼭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잘 드시는 모습이 그렇게 예쁘고 감사해요.” 설사 그들을 돌보다 상처 받아 원망심이 생기면 성가 182장 ‘예쁘고 밉고’ 한 자락에 흘려보낸다. “보시하듯, 그게 마음의 복을 짓는 행동이니까요.” 정은 채우고, 미움은 쓸어보내는 마음. 차곡차곡 쌓아가는 복이 그의 미소에 풍만히 묻어난다.

[2023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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