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은둔형 외톨이 청년을 신고한 사람은 그의 부모였다. 망상이 심해진 데다 폭력까지 행사하니, 참고 참다 결국 경찰서로 전화를 건 것이다. 경찰은 청년에게 말을 걸고, 그의 횡설수설하는 헛소리를 듣고 또 들었다.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느끼고 있던 청년은, 드디어 119차량에 올랐다. 

그런데 병원에서 과대망상으로 입원 판정을 받자, 청년은 갑자기 섬망(급성 혼란 상태)을 보였다. 간호사들이 팔을 묶자, 청년은 경찰을 쏘아봤다. 분노와 슬픔이 섞인 눈동자, 원망심 그득한 눈빛이 경찰에게 날아와 ‘콱’ 박혔다. 벌써 6년이 흘렀지만 좀처럼 잊히지 않는, 최창규 경위(소양로지구대, 춘천교당)의 아픈 기억 한 편이다.

“내가 다르게 행동했으면 더 좋은 결과가 있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과연 그게 최선이었나 돌아보고, 앞으로 그런 일이 또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상상도 해봐요.”

잘 들어만 줘도 본래 마음 찾아
경찰의 삶 25년, 그는 경찰을 이런 직업이라고 소개한다. ‘불편함을 대신 전달해주는 사람, 법까지 가지 않게 중재하는 사람, 그리고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 “현장에 가면 제일 먼저 이해관계를 파악해야 합니다. 빨리 알수록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보여요. 보통 양쪽이 모두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대부분은 감정의 문제죠. 예를 들어 층간소음의 경우, 내 고통을 다 전하지 못하니 경찰을 찾게 돼요. 그러면 일단은 ‘많이 힘드셨죠?’ 하며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이 ‘들어주기’ 단계에서, 민원인들의 감정은 대부분 누그러든다. 그저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본래 마음을 찾는 것. 다음 단계는 ‘퇴로열기’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던 감정을, 뒷걸음질할 수 있도록 슬쩍 밀어준다. 이렇게 깊이 공감하고,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면 바위 같던 원망과 분노도 스르르 녹는 게 현장의 매력이다.

“처음엔 저도 정의를 실현하는 경찰이고 싶었죠. 그런데 이제는 ‘잘 들어주는 경찰’이 꿈입니다. 또 제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니 조심스럽죠. 그래서 늘 ‘절대로 낙망하거나 절망하지 말라’는 스승님 말씀을 되새겨요.”

자살시도를 했다 구출된 10대 청소년에게도 그는 “네가 겪는 건 별거 아니야”나 “그거 다 지나갈거야”라 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감히 너의 고통을 알 수는 없지만, 무시하지는 않을게. 하지만 절대로 포기하지는 마”라고 했다. 진심이었다.
 

경찰 25년, 누구보다 빨리 달려가는 현장 중재자
최근 자살, 은둔, 고독사 등 외로운 현장 많아져
“원불교 역할 든든해, 생사관․교법 더 알려지길”

2~3일에 한 번은 자살 제보 
점차 늘어나는 자살을 그는 현장에서 체감한다. 사실 지구대로 오는 전화가 10통이면 6통은 교통사고, 3건은 폭력, 나머지 1건은 살인․방화․마약 그리고 자살이다. 언뜻 보면 많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 그는 2~3일에 한 번씩은 자살 사건을 만난다. 특히 투신이 빈번한 소양2교가 관할이라 주말이나 연말이 다가오면 촉각이 곤두선다.

“독거노인 비관자살도 증가했죠. 예전에는 음독이 많았는데, 점차 고독사가 늘어요. 현장에는 그 외로움과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죠.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이후’가 정말 중요해요.”

바쁜 와중에 그가 사회복지사 자격을 공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경찰의 원래 몫인 병원까지의 인계를 넘어, 자살예방센터나 법률구조관리공단 같은 곳을 소개해 진심으로 상대를 살게 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이분들이 원불교를 안다면 생사의 문제를 더 잘 알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결국 마음을 함께 살려야 진정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어요. 자살 예방과 유가족 위로, 사회적 치유에 원불교가 많은 역할을 해주니 든든하고, 더 많이 기대도 해요.” 

경찰, 나답게 살아도 될 직업
이토록 모든 것에 진심인 그, 왜 경찰이 됐을까. 첫 대답은, ‘강원대학교 졸업 무렵 IMF가 도래해 안정적인 직업이 필요해서’였다.

허나 진짜 이유, 바로 ‘나답게 살아도 될 직업’이라서였다. 피 끓는 20대에 바라본 세상 어느 곳도 비리나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 가운데 그래도 막 개혁 바람이 불던 경찰은 나아 보였다. “경찰로 살면 양심을 저버리지 않아도 되겠다”싶었다.

여기서 훌쩍 어린 그를 만난다. 애초부터 남달랐다. 춘천 어린이들은 다 한다는 딸기 서리를 딱 두 번 했는데, 다들 안 걸리는 것을 그는 두 번 다 걸렸다. 억울하니 더 열심히(?) 할 법도 한데, 이 어린이는 ‘나는 나쁜 짓 하면 안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그는 “그 후로도, 나쁜 짓만 하려 하면 뭔가 탈이 났다”고 말하며 웃었다.

이 비범한 소년은 ‘선(禪)’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런데 갈 곳을 몰랐다. 같은 고등학교 친구 호선이가(박대진 교도) 그 얘길 듣더니 춘천교당에 데리고 갔다. 교무님이 주신 <원불교 교전>을 훌훌 넘겨보는데 훅 꽂혔다. ‘인도품’이었다. “그 당시 저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느꼈던 억울함이나 손해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런데 ‘인도품’ 그 마음을 한 줄 한 줄이 다 위로해주는 거예요. 제 인생을 다 보상받은 느낌이었어요.”
18세 남고생에게 이토록 깊은 속이 있었음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여기에 법문은 그에게 빛이 됐고, 설법은 기쁨 그 자체가 됐다. 마음을 턱 붙이니, 교당에 빠질 수도 없었다. 교당에서 만나 가정도 꾸리고, 그 신앙이 한결같이 35년이다. 

“근무복 조끼에 늘 작은 교전을 넣고 다닙니다. 뭘 결정해야 할 때, 틈틈이 펼쳐 힘을 얻죠. 신앙처럼 시민들의 뜻을 헤아리고, 더 듣고, 배우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사실 모든 경찰은 다 그런 마음이에요. 밖에서 보면 그냥 겁 많고 소심한 아저씨․아줌마라도, 경찰복 입으면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어지죠.”

12월, 춘천 소양로지구대는 안전한 세밑을 위해 고삐를 새삼 쥔다. ‘어렵고 다사다난했던 2023년 연말이라도 평화롭기를, 그리하여 오는 새해 희망으로 맞기를.’ 춥고 긴 겨울밤을 지키는 대한민국 모든 경찰을 대신해 그가 전하는 인사다.

[2023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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