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겨울’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풋풋한 연인 사이라면 ‘첫눈’이 떠오를 것이고, 가슴 시린 이라면 매섭토록 칼칼한 ‘추위’를 먼저 떠올리려나. 목도리와 장갑, 따끈따끈한 호빵, 크리스마스 구세군 냄비 등 각자의 사연 따라 떠오르는 겨울 이미지가 다를 터. 그러나 그때 그 시절엔 겨울 하면 ‘연탄’이 절로 떠올랐다.

그때 그 시절,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10월부터 월동준비를 해야 했고, 월동준비 1순위는 ‘단연코’ 연탄이었다. 불과 30여 년 전, 전국 340개 탄광에서 생산된 무연탄으로 100% 제조해 사용했으니, 당시 연탄은 온 국민의 연료였다. 
 

대전충남교구 연탄나눔
대전충남교구 연탄나눔

연탄에 울고 연탄에 웃었던 시절, 꼭두새벽 연탄불을 갈기 위해 어김없이 일어나셨던 부모님의 노고를 다시금 헤아려본다. 옛날 집 구조상 부뚜막 깊숙이 연탄 아궁이를 끄집어내고 밀어넣는 일도 만만치 않고, 연탄집게로 능숙하게 탄불을 들어 빼고 넣는 일도 신기했다. 연탄과 연탄이 딱 붙어 있을 때면, 불붙은 탄이 상하지 않게 분리시키는 일은 (부모님의) 능숙한 손놀림이 아니면 낭패 보기 일쑤였다.

별다른 난방기구가 없었던 그때, 연탄 1구를 넣는 작은 난로가 있었다. 1구만 넣는 난로는 불을 피울 수 없기에, 불이 붙은 연탄만 사용해야 했다. 때문에 시장 상인들을 위해 연탄불을 피워서 파는 집도 있었다. 가게 안 쪽, 반 평 남짓 장판을 깔아 놓은 공간은 밑이 비어 있어 겨울에 그 속으로 난로를 넣고 담요를 깔아 보온을 대신했다. 불구멍을 조절하면 장사 마칠 때까지는 쓸 수 있었다. 

연탄으로 한겨울을 이겨낼 우리의 이웃을 생각해보는 시간, 시 한 편 전하는 일로 마음 싣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중.

[2023년 12월 20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