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하 교무
이도하 교무

[원불교신문=이도하 교무] ‘어쩌면 한국적 삶이 미래 일상에 대한 샘플에 될 수 있다’고 한 말에는, 몇가지 조건과 전제가 필요하다.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을 ‘폴리글랏’이라고 하는데, 단 한가지 언어만 구사하는 사람은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묻는 미국식 유머가 있다. 정답은 ‘아메리칸’이다. 이는 모국어인 영어만 하면서, 미국 외 세상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미국인들 스스로에 대한 자조적 농담, 또는 은근한 우월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의 일상은 창의적 사고와 실천을 요구한다. 그리고 창의적 사고의 출발은 다양성이다. 인공지능(AI)이 던져준 충격과 혼란에 대해 남·녀나 세대갈등을 넘어선 지식갈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 인공지능을 일상에서 잘 활용할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의 격차 및 차별에 대한 문제다. 사회구조적으로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정책적으로 모색해야 되지만, 개인으로서 무엇보다 필요한 준비 덕목이 있다면 역시 다양성에 기반한 창의적 사고와 실천이다.
 

한국적 삶의 양식을 ‘수용-융합-재창조’라고 요약했는데, 굴곡 많은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통해서 한국인은 외래문화에 대한 다양한 수용의 과정을 겪어 왔다. 내·외적 조건이 어우러진 수용과정과 한국인의 융합적 DNA가 만나 재창조의 역사를 쓰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여전히 대중문화가 중심된 한류의 지속가능성, 나아가 한국문화 또는 한국인의 삶 자체가 미래적 일상의 샘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적극적 교류를 통한 문화적 ‘다양성의 수용’이 기반돼야 한다. 

헤게모니(패권) 싸움 같은 것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한류, 또는 소위 ‘국뽕’, 즉 자국에 대한 자부심에 취한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넘어 폐쇄적으로 외부적 다양성에 대해 관심이 줄어들거나, 상대를 업신여기거나 배타적인 태도로 우리가 최고라고 착각하는 순간이 온다면 ‘아메리칸’이라는 농담은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닐 수도 있다. 

어느새 문화 강국이 된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경제 또는 군사적으로 강대국이 되어 주변국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다. 제4대를 맞는 원불교의 교세가 커져 교도수가 늘어나고 결복시대 세계적 주류 종교가 되어 가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하지만 그러한 교세와 관계없이 이 시대, 이 사회가 종교에 요구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실천적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종교적-탈종교적-통종교적 대안이 되어 모두 함께 정신개벽의 미래일상을 맞이하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한국예술종합학교

[2023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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