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상진 교무
송상진 교무

[원불교신문=송상진 교무] 얼마전 아침 좌선시간을 마치며 <대종경>을 소리 내 봉독하는데, 가슴을 울리는 법문을 만났다. “창립 십이년 기념식에  대종사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중략) 만일 선진들이 없었다면 후진들이 그 무엇을 배우며 어디에 의지하겠는가. 그러므로, 후진들로서는 선진들에게 늘 감사하고 공경하는 마음이 나서 모든 선진들을 다 업어서라도 받들어 주어야 할 것이요, 또는 선진들로 말하면 시창 당초부터 갖은 정성을 다하여 모든 법을 세우고 여러 가지 기관을 벌여 놓았다 할지라도, 후진들이 이와 같이 이어 나와서 이 시설을 이용하고 이 교법을 숭상하며 이 기관을 운영하지 아니하였다면, 여러 해 겪어 나온 고생의 가치가 어디서 드러나며, 이 기관 이 교법이 어찌 영원한 세상에 유전하여 세세 생생에 끊임 없는 공덕이 드러나게 되겠는가. (중략) 선진 후진이 다 이와 같은 생각을 영원히 가진다면 우리의 교운도 한 없이 융창하려니와 그대들의 공덕도 또한 한없이 유전될 것을 의심하지 아니하노라.”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 구절을 자주 연마하게 된다. 특히, 일상 속에서 가끔 ‘선배님들은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걸까?’ 또는 반대로 ‘후배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나 때는 그렇게 처신하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게 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 법문은 상호 의존과 존중이 원불교의 유지와 번영에 있어 얼마나 필수적인지 강력하게 상기시켜 준다. 나는 가끔 이 원리를 간과하고 내 좁은 안목에 사로잡혀 있거나, 내면이 아닌 외부로 관심을 돌리기도 했다. 사실 선진님들 세대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서 성장했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경험했다. 후진님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급변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자랐다. 경계가 다르고 경험도 다르다는 상황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은 
통합적이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의 설립을 돌아보더라도, 선배 교무님들의 노력과 헌신이 내가 연구하고, 가르치고, 일하는데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빚진 마음은 단순한 부담이 아니라 선진님들이 깔아놓은 기반 위에서 후진들이 번창할 수 있는 토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님 또한 ‘어느 때 어디서 어떠한 사람을 대하거나 어떠한 물건을 대하거나 오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고 강조했다. 이는 우리가 모든 사람과 상황에 대해 일관된 존경과 경외의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특히 우리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법문을 잊기 쉽다. 때때로 존경과 경외심 대신 원망과 분노로 표출하기도 한다.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은 친절할뿐 아니라 통합적이고 지혜로운 인간이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사람에게는 사회적 기술도 필요하다. 친구를 사귀거나 공동체를 가꿔 가는 실제 과정은  다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관계를 해치지 않으면서 의견을 달리하기도 하고, 적절하게 자신의 약점도 공개하고, 좋은 청취자도 되며, 용서를 구하고 제공하는 방법도 배우고, 모든 사람이 포용받는다고 느끼도록 모임도 주관하고, 역지사지하는 방법을 아는 것과 같은 일련의 작고 구체적인 행동을 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얼굴을 사랑과 수용으로 바라보기를 갈망한다. 

우리 모두는 밖으로 표출하는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있다. 따뜻함을 발산하는 사람은 만나는 이들의 빛나는 면을 이끌어내는 반면, 밖으로 격식을 풍기는 사람은 같은 사람을 만나도 딱딱하고 무관심하게 대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우리에게 길을 닦아준 선진들을 존중함과 동시에 젊은 후진들이 가져올 많은 변화를 존중할 때, 우리의 발전은 양양할 것이다. 

/미주선학대학원대학교

[2023년 12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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