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실 있는 풀빌라, 요가클래스 있는 리조트 늘어
외국인 내한 이유, 자연풍경 38%․문화체험 35.5%
산림치유대회․해양치유센터 열고 ‘휴양벨트’ 조성

한적하고 고즈넉한 남해의 언덕, 나비가 앉은 듯 사뿐히 지어 올린 단층의 숙소는 바다를 향해있다. 야생화와 몽돌 사이를 밟아 객실에 들어선다. 밝은 조명과 화려한 가구, 대형 TV 대신 낮은 조도와 담백한 인테리어, 빔프로젝터의 은은한 음악이 배경이다. 여행자들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숙소 가장 안쪽 명상실에 들어선다. 자그마한 공간에 단출한 탁자, 싱잉볼, 인센스 스틱이 올려져 있다. 왕골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입정에 든다. 지금, 이곳은 여행 속 선방이요, 한 평짜리 나의 완전한 힐링이 된다.
 

시니어․나홀로 여행이 원하는 힐링숙소
종교 건물도 아닌 일반 숙소들이 명상실이나 다도실을 품으며 ‘K-힐링’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웰컴드링크 대신 차를, TV 대신 풍경이, 늦잠 대신 요가가 맞이하는 ‘명상형 숙소’는 다양해진 한국인들의 여행 욕구를 만족시키며, 대한민국 곳곳에 찾아드는 외국인들에게도 ‘K-힐링’을 보여준다.        

K-힐링 바람은 남해와 거제, 제주로부터 불어온다. 이 남풍의 이유를 이렇게들 본다. 오랫동안 괌이나 동남아였던 태교여행지가 코로나19로 인해 국내로 바뀌면서,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숙소와 예쁜 명소가 많은 남해 등으로 집중됐다. 또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니어들의 자유여행이나 도심에 지친 직장인의 ‘나홀로여행’이 늘어나면서 화려하고 시끄러운 곳이 아닌, 휴식과 건강이 어우러진 ‘힐링숙소’를 찾게 된 것이다. 

이런 숙소들은 대부분 명상 공간과 도구가 마련되어 있다. 미니 경종 같은 싱잉볼, 다양한 향의 인센스 스틱, 더러 목탁이나 풍경도 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숙소들은 매일 차크라, 빈야사, 하타 등의 요가와 오쇼쿤달리니, 음악, 싱잉볼, 다도 등의 다양한 명상 클래스를 진행한다. 특히 한옥에서 이 같은 다도와 아궁이 체험, 한식 정찬을 패키지로 묶은 상품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
 

경쟁과 과로를 치유하는 K-힐링 
K-힐링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물론, 여전히 위세 등등한 K-컬처가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단연 음식 68%, 쇼핑 51.5%지만, 자연풍경 감상이나 문화 체험도 각각 38%, 35.5%로 그 수요가 적지 않다(2022년 외래관광객 조사). 외국인들에게는 새로운 한국형 힐링의 경험이며, 경쟁과 과로가 심한 한국인들에게는 위로가 되는 ‘여행형 K-힐링’에 관심이 쏠린 이유다. 

산과 바다도 힐링을 껴안았다. 먼저,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이다. 10월, 전라남도 화순군 일대에서 열린 2023 세계산림치유대회에서 다양한 힐링 프로그램이 제안됐다. 국립화순치유의 숲에서는 햇빛과 향기를 활용해 불면증을 개선하고, 국립고창치유의숲에서는 숲속 소리를 활용해 스트레스를 낮췄다. 또한 우드버닝공예, 편백칩주머니만들기, 숲속VR 등 산과 힐링을 결합한 체험들도 선보였다. 

다음은, 동서남으로 달리면 닿는 바다다. 11월 전남 완도에 문을 연 ‘해양치유센터’는 해변 운동, 해조류 거품테라피, 수중 재활 운동 등을 할 수 있는 해양수산부의 야심작이다. 해수부가 2017년부터 연구, 완도를 시작으로 충남 태안, 경북 울진, 경남 고성, 제주까지 설립을 이어간다.

최근 정부가 향후 10년 동안 3조를 들여 ‘K관광 휴양벨트’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 맥락이다. 이 중 순천, 여수, 남해, 진주, 사천 등의 남중권은 한국형 웰니스 관광테마, 해양치유관광, 웰니스&워케이션 등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훈련원과 프로그램이라는 자산 
이 같은 K-힐링의 시대를 원불교는 어떻게 선용할 수 있을까. 천혜의 자연과 어우러진 훈련원을 비롯, 다양한 선, 마음공부, 일기법, 회화 등 수없이 검증된 힐링 프로그램이 이미 우리의 자산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위로하고 치유할 수 있는 상담, 대안교육, 자살예방, 심심풀이 등 그동안 길러낸 전문적인 인재층도 두텁다. 이를 세상의 눈높이, 세대별 테마별 트렌드로 녹여낼 때다. 번아웃된 MZ세대가 ‘다도힐링’하러 청해진다원을 찾고, 비어가는 시골교당이 여행객들의 ‘고민상담 족욕탕’으로 북적이는 그날을 그려본다. K-힐링의 또 다른 이름은 W-힐링이 되는 시대. 이제는 문화가 마음을 치유하고, 아이디어가 사람을 살리는 세상이다.


K-힐링의 DNA,
‘선비’와 ‘신바람’

우리는 가끔 스스로 묻는다. 왜 우리는 힐링한다고 해놓고 마냥 먹고 놀고 쉬지 못하는가. 꼭 어딘가에 가서, 무언가를 하며 치유를 얻고자 하는가. 이 이상한 K-힐링의 뿌리를 되짚으면 답이 있다. 우리에게는 이른바 ‘선비’의 DNA가 흐르고 있어서 ‘위엄 있는 여가’를 통해 재충전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창출해낸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힐링에 또 하나의 키워드가 있으니 바로 ‘신바람’이다. 이제학 고문(힐링산업협회)은 우리 민족의 특질에 대해 “절체절명의 상황이 오면 물줄기를 옳은 방향으로 틀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묘한 생명력이 이 신바람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우리의 응용력이나 응집력, 융통성은 다사다난한 역사에 대응하며 극복해낸 오랜 민족성에서 기인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서로를 북돋우며 해내는 신바람, 이것이 우리 안의 ‘K-힐링’인 것이다.

[2023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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