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원 교도
김상원 교도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7살, 5살된 자녀들만 그의 곁에 남았다. 그때 김상원 교도(광주교당)의 나이는 시리도록 푸른 28살이었다. 당시 교당에서 남편의 49재를 지내며 원불교를 버팀목 삼았다는 그. “그때부터 어려운 일(경계)이 닥쳐와도 도반들과 의논하고 넘겨냈어요.” 그렇게 법동지들과 ‘서로 못나눠줘서 안달’하며 여러 세월을 살아왔다. 

특히 연원인 故 김정근 원로교무와는 엄마와 딸처럼 지내며 살았다. “열반하시기 전 틀니를 해드렸는데 1년도 못지내고 가셔서….” 살아생전 진심을 다 했음에도 더 해드리지 못한 게 죄스러워 가슴을 칠 만큼 지고지순한 정(情)이, 생사가 갈린 지금도 두 사람 사이에 여전히 흐른다.

그가 경계를 맞닥뜨릴 때마다 온전히 취사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무장시켜준 또 다른 힘은 원불교 훈련에 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원불교 훈련은 ‘단 한 번도’빠진 적이 없어요. 일을 대신해 줄 사람을 구해놓고서라도 꼭 훈련은 받았죠.” 

과거 죽을만큼 억울한 일과 함께, 절대 용서 못할 것 같은 사람이 생긴 적이 있었다. 그때 김 교도는 훈련을 받으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용서할 힘과 기회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훈련 이후에도 이어진 기도 덕분일까. 어느 순간 그 사람을 마주하자 놀랍게도 측은함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측은함 이후에는 다가갈 마음이 나고, 또 그동안 가졌던 원망이 ‘물 흐르듯이’ 지나가더라고요.” 원망이 모두 쓸려나가고 남은 자리에는 밥도 한 끼 사주고 싶고 등도 토닥거려주고 싶은 마음이 새롭게 자리했다. “원불교 공부가 그런거잖아요. 이 법을 몰랐으면 (경계에서) 마음을 ‘감사’로 돌리지 못하고 평생 쨍그랑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대로’만 살았을텐데,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요.” 

어느덧 일흔을 넘긴 나이, 인터뷰를 핑계삼아 돌아본 지난 세월 속 한 기억. 봉공회에서 팔 바자회 물건을 차도 없이 걸어서 ‘이고 짊어지고’ 교당가던, 어느 날의 기억이다. 당시 서른살도 되지 않았던 그보다 곱절은 나이 든 선배 교도는 젊은 자신보다 더 씩씩하게 물건을 챙겨 걸었다. 

그런 뒷모습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살다 보니 어느덧 원불교 인생이 46년에 이르렀다. “다음 생에는 전무출신은 못하더라도 원불교 집안에서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두 팔을 둥글게 원으로 모아 만든 둘레를 ‘아름’이라 한다. 매번 서원나무에 올곧게 같은 서원을 매다는 김 교도의 모습은 그대로 ‘아름’ 답다.

[2023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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