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치열한 정글 생태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마음 아프다.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성공이란, 죽지 않고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신체적 위협, 게다가 다른 동물과 달리 심리적 고통까지 견뎌야 하는 인생 정글에서 살아남아, 또 한 해의 끝에 서 있다.인생이란, 힘든 일 한 번, 살 만한 일 한 번씩 지나가기를 반복하며, 자기만의 천을 짜는 과정이다. 누구에게나 씨실 역할의 힘든 일, 날실 역할의 좋은 일이, 한 번씩 교차해 일어난다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는 것이 지혜다. 씨실만 반복되거나 날실만 계속되는 인생은 있을 수 없다. 모름지기 삶이란, 고락, 음양, 추위와 더위, 이런 일 저런 일이 균등하게 엮여서, 고유의 무늬를 형성하며 만들어진다. 

견디기 힘든 시간을 잘 엮어가는 비법은, 일어난 일 그 자체, 실 자체에 빠지지 말고, 모든 일을 씨실 날실로 여기며 무심히 천을 엮는, 직녀가 되어 사는 것이다. ‘힘든 일도 겪고 좋은 일도 겪으면서, 누구에게나 인생이라는 천은 이렇게 짜여지는 법이지!’ 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직녀의 위치에서 받아들이면, 어느새 멋진 무늬의 천이 완성된다. 다행히도 그 과정에서 해탈과 지혜와 힘이 덤으로 주어진다. 겪지 않고는 어떤 성장도 지혜도 힘도 얻지 못한다. 
 

인생의 고락, 
삼한사온, 
음양, 
씨실 날실을 자원 삼아, 
멋진 무늬가 새겨진 
또 한 필의 걸작이 
완성되고 있다. 

 

매 순간 그렇게 
살아남아 있으면 
진리가 다 알아서 
또 다른 길을 열어줄 것이다. 

내겐 그냥 편하고 좋은 일만 있길 바란다면, 그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마음의 괴로움만 증폭시키는 망상이니, 일찌감치 접어두는 게 좋다. 한 방향의 실로는 천이 되지도, 쓰임새도 없는 무용지물이 되니 말이다. 

호두농사 짓는 농부가 하도 간절히 기도하길래, 신은 그의 바람대로 적절한 비와 햇살과 바람을 내려, 크기와 양도 엄청난 풍작을 만들어 줘봤다. 가을이 되어 농부가 탐스런 호두를 까보니, 속이 다 텅텅 비어있더라는 우화처럼, 혹독한 더위와 가뭄과 모진 비바람을 겪어야, 영혼이 깨어나 그 힘으로 속을 꽉 채우는 법이다.

진리는 우주만물을 다 살리는 큰 계획하에 돌아간다. 우주 한 몸인 법신불은 음양의 두 힘에 의해 영원히 생생하게 살아있다. 법신불의 세포 하나하나도 음양의 두 기운으로 살아가며, 우주 세포인 인간 역시 음양, 즉, 힘든 것, 편안한 것을 교차시키며 살려내고 있다. 음과 양은 우주 만물을 영원히 살리는, 반드시 필요한 은혜의 요소니, 좋고 싫은 일에 집착하고 거부하며 괜한 괴로움 만들지 말고, 다 뜻이 있는 진리의 운영에 툭 내맡기며 살 일이다.

계속 춥기만 하거나, 계속 따뜻하기만 한 인생은 없이, 누구에게나 며칠은 따뜻하고 며칠은 춥기를 반복하는 삼한사온이다. 일 년, 일생을 놓고 보면 고락이라는 삼한사온 총량은,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섞여 돌아가는, 그게 바로 인생이다. 삼한사온을 예측하고 살면, 좋고 싫은 일에 함몰되지 않고 삶을 평화롭게 운영할 수 있다. 

인생의 고락, 삼한사온, 음양, 씨실 날실을 자원 삼아, 멋진 무늬가 새겨진 또 한 필의 걸작이 완성되고 있다. 일체가 걸작이며 완벽한 신의 작품이다. 찬란하게 빛나지 않아도, 시들지 않고 살아있으면 됐다. 매 순간 그렇게 살아남아 있으면 진리가 다 알아서 또 다른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 많은 일들을 겪어내며 잘 살아남은 그대의 위대한 발걸음에, 빛나는 레드카펫을 깔아두고, 웃으며 찬사를 보내고 계시는 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변산원광선원

[2023년 12월 2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