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66년 동안 3대(代)를 이어 온 ‘좋은 것 나누자’는 마음
지역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새로운 예술을 품고 키운 터전
오래된 손님이 자녀·손자녀와 같이 찾아오는 ‘마음의 고향’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최근 레트로(Retro, 복고풍)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 모은다. 덕분에 젊은 세대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열광하고, 어른 세대는 추억에 절로 빠진다. 두 세대의 차이라고 하면 기성세대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가 있고, 젊은 세대에게는 없다는 점뿐. 이에 ‘뉴트로(Newtro)’라는 말도 생겼는데, MZ세대가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과거의 문화를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면서 새로운 복고가 이뤄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런 레트로·뉴트로의 바람을 타고 오래되고 숨어있던 지역의 명소가 새로운 핫플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대구광역시에서 고전음악과 함께 선대의 뜻을 지켜온 ‘하이마트(Heimat) 음악감상실’(이하 하이마트)이 대표적이다.

음반 때문에 이사도 포기한 사람
하이마트는 올해로 66년 된 ‘고전음악 감상실’이다(여기서 고전음악은 클래식을 뜻한다). 6.25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대구로 피난 온 김수억 창립주의 SP 음반(LP 이전의 음반 형식)이 하이마트의 씨앗이 됐다.

김 창립주는 사업가이면서도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서울에 살 때 처음 고전음악을 접한 후 ‘이런 음악이 있구나’ 하며 음반을 하나둘 사 모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대구로 내려와서도 음반 수집은 계속됐다. 덕분이라 해야 할까. 전쟁이 끝났지만 김 창립주는 서울로 돌아갈 수 없게 됐다. 원래 가지고 있던 음반과 대구에서 모은 음반들이 집의 툇마루를 내려 앉힐 정도로 늘어났고, 그 수많은 음반을 안전히 서울까지 이동시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음반을 지키기 위해 서울행을 포기하고 대구에 머물기로 결단을 내린 김 창립주. 이 이야기로 음악에 그의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대구에 자리를 잡기로 한 후 김 창립주는 “이 좋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음악감상실’을 열었다.
 

좋은 것을 나누니, 새로움이 빗어지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길을 선택한 김 창립주의 결단에 대구의 문화와 예술을 이끄는 사람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감상실 이름인 ‘하이마트’는 독일어로 ‘고향’이라는 뜻인데, 이 이름은 송영택 교수(서울대 독문과)가 지어줬다. 

하이마트가 생기자 지인들은 다양한 음악을 편히 들을 수 있게 됐고, 김 창립주는 그 수익으로 음반을 구매하고, 많은 음반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할 수 있었다.

1957년 문을 연 하이마트는 창립 초기부터 대구 시민들과 지성인, 예술인들을 불러들였다. 하이마트를 찾은 이들은 모두 ‘서양 음악’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하루에 많으면 무려 700여 명이 매장을 찾아왔고, 자리가 부족해 바닥에 신문을 깔고 앉아 음악을 듣는 사람도 많았다. 이들은 하이마트에서 음악을 즐기며 영감을 얻고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문화를 함께 만들어 나갔다. 

이곳이 이렇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화였음이 첫째 이유였고, 교향곡이라는 소리로 만들어 내는 구조성에 대한 관심, 또 ‘저 어려운 음악을 들어야 잘 나간대, 우리도 들어보자’ 하는 귀여운 이유도 있었다. 

당시 젊은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대학생 음악 감상 동아리들이 하이마트를 찾았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머물며 음악을 듣고, 연구했다. 손수 회지를 등사해 만들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회지는 지금도 하이마트에서 방문객의 손길을 탄다.
 

3대째 운영하며 만나는 3대째 손님
하이마트는 휴게실과 음악감상실 두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대구역 앞에서 동성로로 옮겼을 때의 첫 구조에서 크게 변화가 없다. 그때 집기들도 거의 그대로 사용 중이다. 사실은 막 고칠 수도 없는 형편이다. 가게가 오래된 만큼 기본 몇 년, 길면 수십 년째 방문 중인 단골들이 자신들의 추억이 ‘휙’ 변하는 걸 원치 않아서다.

3대째 운영을 맡고 있는 박수원 오르가니스트(김 창업주 외손자)는 이 공간에 대해 “하이마트를 찾던 분이 부부가 되고, 자녀를 낳아 데리고 와요. 그리고 또 그 자녀가 자녀를 낳으면 3대가 함께 찾아오게 되는 거죠. 시간과 세대를 초월해서 ‘한 공간’을 함께 즐기는 겁니다”라고 말하며 한 마디를 덧붙인다. “이 공간은 그런 것 같아요. 음악을 매개로 서로 나누고 관계를 맺는 그런 자리가 되는 거죠.”

오랜 시간 그 모습 그대로 마치 ‘시간을 멈춰둔 듯한’ 하이마트는, 그 이름의 뜻처럼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자리 잡았다.
 

‘좋은 것 더 많이, 더 오래’
손님들이 오기 전 시간에 이곳을 찾은 덕분에 온전히 혼자 음악감상실을 즐길 수 있었다. 작지만 아늑한 소파에 앉아있자니, 음악이 나오기 전 정적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진다. 곧이어, 신청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흘러나온다. 거대한 음악의 파도 속에 온통 던져진 듯하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다시 정적을 만난다. 

요즘은 손안의 휴대전화를 한번 누르면 언제 어디서든 듣고 싶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정선(精選)된 음반과, 사람만큼 커다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의 향연을 만나보니 ‘왜 음악감상실을 찾는지 알겠다’.

음악감상실은 ‘나’와 ‘음악’에 집중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나의 정서를 신청곡을 통해 타인에게 자연히 공유하고, 또 공유받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싶다. 

하이마트에서 ‘좋은 것을 나누자’고 했던 창립주(외조부)와 그 뜻을 이어낸 2대(어머니)와 3대 대표(외손자)는 단순히 가업을 잇는 데 그치지 않았다. 쌓아 올린 시간과 정성만큼 ‘좋은 것을 더 많은 이에게, 더 오래 전하자’는 그 마음을 대대로 이어온 것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음악감상실 ‘녹향’

대구에는 하이마트보다 먼저, 대한민국에 최초로 문을 연 음악감상실 ‘녹향’이 있다. 녹향은 6.25 한국전쟁 때 대구로 내려온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새로운 예술가들이 꿈을 키우는 장소로도 사용됐다. 
하지만 음악감상실이 쇠퇴하고 2011년 창립주 이창수 선생이 세상을 떠나면서 2014년에 유가족이 녹향의 모든 기자재를 대구광역시 중구에 기증했다. 
대구광역시 중구는 2014년 향촌문화관을 개관하면서 녹향을 향촌문화관으로 옮겼고, 이제는 시민들과 함께 역사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3년 12월 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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