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은 교도
김대은 교도

[원불교신문=김대은 교도] 욕심은 인간의 자유를 막는 치명적인 걸림돌이며 개인의 이익을 방해하는 결정적인 장애물이다. 이 탐내는 마음이 있는 한 우리 삶은 번민과 갈등의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고 증애(憎愛)와 육진(六塵)의 테두리에서 한치도 비켜서기 요원하다. 

무소유란 소유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가지지 않는 사태의 문제다. 그래서 어떤 이유에서건 가진 것을 버린다는 것은 욕망의 또 다른 행태에 지나지 않는다. 진정한 무소유는 무소유에 대한 집착을 지우는 것이다. ‘소유하지 않는다’는 신념을 내려놓지 않는 한 아무리 명예를 버리고 재물을 나누며 권력을 포기하고 세상과 절연하더라도 흉내는 낼지언정 무소유에는 한 발자국도 다가설 수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자유로부터 소외당하고 큰 이익으로부터 외면당한다.     

마음대로 누리는 사람에게 자유는 무가치하게 여겨지지만 자유가 박탈된 이에게는 그것이 어떤 대가로도 취할 수 없는 불가능한 희망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는 정신적․인간적․현대적 차원에서 강제를 벗어났다고 하는 소극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주체의 공세적인 의지와 능동적인 결단이 행동에 관여하는 적극적인 의미로도 파악된다. 주도적인 자유는 외부의 영향이 배제되고 자발적인 결정에 의해서 양성적으로 발현되는데, 이는 곧 자기 절제로 실현된다.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공덕을 쌓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선업.

절제는 독선을 경계하고 감정적 혼란을 조정하며 감성적 욕구를 조절하는 이성적 방식이자 지적 장치다. 참된 자유는 계율을 통한 절제로 가능하다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에서 우리는 자유에 대한 실존적 인식을 발견할 수 있다. 교만과 성급함에서 비롯되는 거친 마음을 순화하고 균형감과 평정심에서 발현되는 한심(閑心)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방종을 견제하고 참자유를 얻는 가장 확실한 태도이자 가장 합당한 방식이다. 

한편 우리는 가능한 많이 받고 적게 주고자 하며 받는 것은 허용하고 계산하며 주는 것은 제한하고 한정한다. 하지만 “큰 이익은 사익을 제어하고 사욕을 버리는 마음에서 가능하다”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은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공덕을 쌓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 토대를 훌쩍 뛰어넘는 가장 큰 선업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그래서 비상한 이득은 베푼다는 의식이 없고 눈앞의 이해득실을 감안하지 않으며 도움과 대가를 고려하지 않고 건네는 진실한 호의와 순수한 배려에서 획득된다. 

이윤을 빠듯하게 따지고 그것을 노골적으로 셈하는 술수로는 종래에 작은 이익도 빼앗기는 손해를 감수해야 할지 모른다. 큰 이익을 얻으려면 주고받는 처지를 둘로 보지 않고 오고 가는 사정을 분별하지 않는 불이(不二)의 마음인 공심(公心)을 양성하라는 소태산 대종사의 말씀을 되새겨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천교당

[2024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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