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권 교도회장
정용권 교도회장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통영 사람들은 자기네 고향을 ‘토영’이라 부른다. ‘토’ 자에 힘을 담고, ‘영’ 자에 훅 빼버리는 그 묘한 발음을 통해 단박에 ‘토영 토박이’를 구분해낸다. 토영 토박이들에 대한 외지인들의 평은 대체로 이러하다. ‘바닷가맹키로’ 무뚝뚝하며 강인하지만, ‘쥑이는’ 미항의 풍경과 풍족함에 섬세하고 예술을 우러른다고. 요샛말로 ‘츤데레(차가운 듯하지만 속으로는 다정한)’ 스타일이랄까. 

남쪽의 따뜻한 겨울 가운데 만난 정용권 통영교당 교도회장(법명 종환)도 꼭 그랬다. 너털웃음과 손사래로 한없이 겸양하면서도, 원불교나 교화 이야기만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한껏 다가오는 이 사람. 지난해 그는 입교 45명을 달성, 통영교당이 ‘1년 100명 입교’라는 전설을 이뤄내는 데 큰 몫을 해냈다. 

통영 앞바다 그물마냥 촘촘한 입교 작전

“교도회장이 되고 보니 교당 대수선 공사를 해야겠더라고요. 그런데 ‘그 큰 공사를 할 만큼 교도수가 되나’ 생각하니 안 되겠대요?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들어본 중에 참 단순한 이유지만, 마음먹은 이상 해낸 것이 그다. 찬찬히 돌아보니 입교시킬 사람이 ‘천지빽가리’였다. 그의 가게 ‘장어세상’이 위치한 서호전통시장 사람들, 앞서 25년 동안 근무했던 통영시청에서 만난 인연, 더 거슬러 경남자영고 시절 사천교당부터의 학생회 청년회 인연, 그리고 그 모든 통영 토박이 이웃들까지… 모두가 귀한 대상이었다.

“교화할 사람이 생기면, 먼저 휴대전화에 저장된 이름부터 바꿉니다. ‘예비교도 ○○○’라고 바꾸고 뒤에 숫자도 써요. 소통이 잘되고 호감을 보일수록 1번에 가까우니, 뒷번호일수록 공을 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카톡으로 인사나 기분 좋은 글을 전달하면서, 사이사이에 법문도 보내고, 교당 소식도 공유하지요.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서 만나고요.”

예비교도 명단은 못 해도 수십 명, 많게는 100명도 된다. 매일 숫자를 수정하는데, 한 사람 한 사람마다의 숫자 변화가 머릿속에 쫙 펼쳐지는 수준이다. 그렇게 입교증을 받게 되면 ‘예비교도 ○○○’는 ‘신입교도 ○○○’로 업그레이드되고, 출석이나 참여에 따라 또 숫자가 붙는다. 통영 앞바다에 쳐놓은 그물마냥 빠져나갈 새 없이 촘촘하다. 

“지갑과 휴대전화에 늘 입교원서를 갖고 다닙니다. 원서 받을 때도 원칙이 있는데요, 입교증 발급비 2천원을 꼭 받아와요. 적은 돈이지만, ‘내 주머니’에서 나가야 기다리게 되거든요.”
 

지난해(원기108) 통영교당 입교 100명 달성 일등 공신
서호시장 상인, 공무원 동료, 식당 주인 등 45명 입교
‘예비교도 ○○○’, ‘신입교도 ○○○’라 저장하고 숫자 매겨 불공

집안 시제도 교당으로 모셔 와

대대로 통영 사람에, 공무원 25년, 서호시장상인회 회장까지 했다지만 어찌 교화가 쉽기만 할까. 대체 어떤 사람들을 입교시키는지 물었더니 명단이 툭툭 나온다. 시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 공준우, 시장 안 세탁소 사장 강진우를 비롯, 최근에는 밥 먹으러 갔던 식당 주인 부부도 입교원서를 썼다. 시도 때도 없이 교화 열매가 터지니, 통영교당은 합동 입교식을 3월과 6월, 10월에 3번 지내야 하는 교당이 됐다. 이상균 교무는 기자에게 “교도회장 되시고 4년 동안 200여 명이 입교했는데, 회장님이 절반을 해내셨다”고 귀띔한다. 

“가족교화부터 해야겠다 싶어서, 집안 시제도 교당으로 모셔왔습니다. 그리고 ‘원불교에서 시제 모시려면 다 입교해야 한다’고 했죠. 교당에서 모시면서 제비는 한울장학금 등 좋은 일에 쓰고, 식당에서 다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 나눠요. 가족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허나 ‘입교만’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의 뜻은 애초 ‘진짜 교도 만들기’였기에 교도들과 신입교도 안착에 공을 들이는 것이다. 그가 단장이고 부회장 2명이 중앙을 맡은 신성단은 신입교도가 이것저것 안내받고 적응하는 꿈나무 반으로, 약 반년을 거쳐야 일반단으로 ‘승진’한다.

“원불교를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1이 아닌, 0부터 알려줘야 해요. 교당에 들어오면 어떤 예의를 갖춰야하는가, 4축2재는 무엇인가, 헌공금은 어떻게 내는가, 하는 것들이요. 상대에 맞게 단체장과 인사도 시키고 어떤 활동을 하는지도 안내해요.”
한때 열댓 명이기도 했던 통영교당의 지난해 평균 출석은 56명. 신입교도 안착률이 높은 데에는 이런 다정함이 숨어있었다. 

교화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

“통영 인구가 많이 줄어서 12만명 됩니다. 12만명 정도 원불교 교도 만들기, 뭐 그리 어렵겠습니까. 사실 교도회장은 교화하기가 퍽 쉽습니다. ‘내가 회장인데, 내 얼굴 살려주러 한 번만 와달라’ 하면 돼요. 그렇게 와서 교도들 편안한 얼굴 보고, 교전 읽어보고, 교무님 말씀 들으면서 웬만하면 가족이 됩니다. 이 좋은 법을 혼자 갖고 있을 수 있나요. 그러니 교화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져요.”

꼭 1년 전인 2023년 1월 신년사에서 그는 말했다. “올해 입교 100명 합시다. 우리 일곱 단이 10명씩 70명하고, 교무님이 10명 하시면 제가 20명 하겠습니다.” 이 100명이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는 365일 중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낸 날이 없었다. 그리고 올해 1월, 그는 다시 말했다. 

“올해 입교 100명, 그리고 평균 출석 100명 해냅시다. 작년보다 더 많아진 우리,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432년 전 이곳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조선에 드리운 암운을 걷어내는 승리를 움켜쥐었다. 청룡의 해, 우리는 또 한 번 통영에서 들려오는 교화 승전보를 듣게 될지 모른다. 정 교도회장과 통영교당이 만드는 희망 동남풍을, 온 세상이 귀기울여 기다린다.

[2024년 1월 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