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원 교무
정봉원 교무

[원불교신문=정봉원 교무] 새해가 시작되면 누구나 새로운 각오와 희망을 꿈꾸며 미래를 계획한다. 시작, 새로움이 주는 단어는 희망, 설렘이다. 

원기109년 결복교운의 시대, 교단 제4대 1회의 첫날이 시작됐다. 새 시대, 새로움을 맞기 위해서는 늘 진통이 있어 왔다. 우리 교단도 4대를 맞기 위함인지 3대의 내홍(內訌)이 만만치 않았다. 

정산종사께서는 8.15해방 후 어수선한 백성들과 흐트러진 나라를 세우는 <건국론>을 제시하며, 그 처음을 단결에 두었다(<정산종사법어> 국운편 5장). 하나된 마음이 있지 않으면 나라가 바로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단결은 각자 마음속의 장벽이 타파되지 않고서는 될 수가 없다고 했다. ‘내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편착심과 존중하는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을 타파해야 할 장벽이라 했다. 

그 단결은 공심(公心)으로부터 비롯된다. 공심이 없으면 단결에 관심 없고, 오로지 시비에만 얽매이게 된다. 공심은 나를 비우고, 나를 밝혀 나와 하나가 되어진 자리에 있다. 그렇게 보면 공심은 철저한 공부심을 바탕으로 한다. 시비이해를 밝히는 데에는 ‘대소유무의 이치를 따라’가 전제함을 알아야 한다. 시비이해를 따지려면 대소유무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대소유무를 알고 시비를 논하면 그 자리에서도 은혜를 양산하게 되지만 이치를 모르고 논하면 단촉한 주의 주장으로 상처만 남게 된다. 시비에 은혜가 묻어나오지 않으면 공부인의 시비가 아니다. 교당의 주인인 임원진들을 선출하는 자격과 기준이 공부 수행인 ‘법위’인 이유다.  

교당에서 교도들끼리 불화하거나, 재가출가로 나뉘어 불화하는 것은 교화의 최악이다. 원망거리를 찾아, 문제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 마음에 분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잘 지내는 이들을 갈라지게 만들고, 이 소문 저 소문을 물어다 여기저기 퍼나르는 사람들. 교단과 스승에 신맥을 떨어뜨리고, 재가출가를 가르는 말들만 해대는 사람들. 그렇게 갈라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진다. 
 

교단 제4대를 이끌어갈 
동력은 재가출가의 단결.
그 단결은 공심(公心)에서, 
공심은 공부심에서 비롯.

사회에서의 해결방식과 종교인들의 해결방식이 같으면 되겠는가? 사회에서는 작은 일도 크게 확대해서 언론화하고 이슈화하여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아 일을 해결해나가는 반면, 종교가의 해결법은 큰 일도 작게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에 들어와서 사회의 해결법으로 나아가려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시비를 논할 때 교화에 도움되는가의 여부로 판단하면 어떨까?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대종경> 신성품 7장에 “신심나게 하는 것이 첫째가는 공덕”이라 했다. 한 명의 신입교도를 두고 몇 년간을 법회보며, 그 한 명을 놓지 않기 위하여 전전긍긍 애를 쓰는 현장교무들의 간절함을 알기나 할까?

돈이 없고, 인재가 부족해도 혈심 가진 이들을 가진 원불교는 내 안의 자랑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장 곳곳과 기관에서 자신이 맡고 있는 일을 사 없이 해내고 있는 출가교역자들. 또 그런 지도자를 따라 힘을 합해나가는 재가교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교단은 이들이 있는 한 건재함을 확신하게 된다.

정산종사께서는 <정산종사법어> 공도편 34장에 “인격은 반드시 마음의 단결로 향상될 것”이라 했다. 안으로 자성과 합일해 인격을 향상시키고, 밖으로 회상과 합일해 교단을 진급시켜나가야 할 사명이 여기에 있다. 

교단 제4대를 이끌어갈 동력은 재가출가의 단결이다. 그 단결은 공심(公心)에서, 공심은 공부심에서 비롯됨이니 우리 모두 부지런히 공부할 수 밖에 없다.  

힘찬 도약의 시대인 제4대. 아직 100년의 역사인 원불교의 색깔은 젊음의 상징인 푸름이다. ‘회복과 전환, 교단을 새롭게 세상을 이롭게’라는 비전으로 용틀임하는 교단이 되고, 곳곳에서 여의주를 얻은 공부인들로, 개벽성자된 교도들로 가득차기를 염원해본다.

/정봉원 교무, 한실교당

[2024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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