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균
윤덕균

[원불교신문=윤덕균] 일원상은 원불교의 독점물이 아니다. 다만 실효적 소유를 할 뿐이다. 

일원상은 태고로부터 태양 또는 달의 상징으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고, 진리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이웃 종교 모두가 메인 또는 보조로 일원상을 응용한다. 특히 태극 문화를 중심으로 하는 동양 3국(한.중.일)의 종교는 일원상을 바탕으로 한다. 중국 도교의 무극 상, 유교의 성학 10도, 파룬궁의 파룬궁 상, 일본 일등원의 무일물중무진장 상, 일본 다이묘의 사목문양 상, 한국 천도교의 궁을진리 상, 대순진리회의 대순진리 상이 그렇다. 

더욱 신기한 것은 천주교 성당의 돔형 구조, 스테인드글라스의 원형 십자가, 영성체에 사용하는 성체, 천주교 성화의 광배 등 천주교가 일원상 신앙의 본류인 것 같은 착각을 느끼게 한다. 이는 일원상 진리가 전 세계, 전 생령이 공유하는 가장 보편적이며 평등한 진리임을 실감케 한다.

또 일원상 진리는 우주의 궁극적 진리로서 본체적 측면으로 보면 불변의 진리이며, 현상적 측면으로 보면 변하는 진리다. 이러한 변과 불변의 진리를 포용하는 일원상 진리는 전 세계 종교가 추구하는 근원적 진리로서 원불교만의 전용물일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일원 78상(진리 약속 상): 
반지가 일원상의 모양을 갖는 이유는?

 

종교는 초인적인 어떤 것과 인간의 약속이다. 다만 종교에 따라 그 약속의 의미는 다르다. 

기독교는 하느님이신 여호와와 인간의 약속이다. 그 약속의 종류에 따라 기독교의 교파가 갈라진다. 여호와와 유대인의 시조인 아브라함과의 오래된 약속은 구약이라고 한다. 이 구약에는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보낸다는 약속을 포함한다. 구약에 따라 구세주로 오신 예수와 인간은 다시 새로운 약속 즉 신약을 하는데, 이 신약과 구약 전부를 믿으면 기독교가 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구약에서 약속한 메시아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구약만을 믿는다. 

신약에는 예수께서 재림하겠다는 약속이 있다. 이슬람교는 신약이 실현돼 이 땅에 재림 예수로서 모하메드가 왔다고 믿는다. 구약만 믿으면 유대교, 신약과 구세주로서 예수를 믿으면 기독교, 구약과 신약 그리고 재림 예수로서 모하메드까지 믿으면 이슬람교다. 

약속의 의미는 조금씩 다르지만, 불교도 약속의 종교다. 다만 약속의 상대가 신이 아닌 진리일 뿐이다. 인간과 진리의 약속은 ‘콩 심으면 콩이 나고 팥 심으면 팥이 난다’라는 인과보응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시기의 차가 있을 뿐 필연적으로 지켜진다. ‘정업은 난면’이라는 말이 있듯, 흔히 죗값을 치른다는 개념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는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과응보는 불교 철학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인 윤회의 작동 원리이자 그것의 원동력이 되는 업과 연관돼 있다. 악한 행위는 업보가 되어 윤회의 고리에서 인간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은 전생에서 지은 죄에 따라 내생의 외모나 고난 등이 결정된다. 이것이 곧 인과응보의 논리다. 인과응보는 불교 윤리의 기본이 되는 사상이다. 

흔히 기독교에서는 인과론을 믿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성경〉(갈라디 6: 7)에서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라 하여 뿌린 대로 거둔다는 인과론을 전개한다. 

우리는 약속할 때, 즉 결혼을 약속하거나 친구가 되기를 약속할 때 손가락을 걸거나 반지를 교환한다. 그런데 손가락을 거는 모양이나 약혼반지의 형태는 모두 일원상이다. 이는 약속의 상징으로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지 모양의 일원상은 신과 인간의 약속, 또는 인간과 진리의 약속 즉, 호리도 틀림이 없는 인과응보의 약속을 상징한다.

/한양대학교 명예교수·중곡교당

[2024년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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