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정륜 어린이] 우리 교당 어린이회는 이끌어가기 꽤 힘든 곳이었다. 어린이가 별로 없는 데다가, 코로나19를 겪으며 대부분 교당에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참 힘들었다. 내가 힘든 게 아니라, 어린이법회 담당 교무님이 힘들었다. 오지 않는 학생법회, 5명뿐인 어린이법회…. 우리 교무님은 그런 곳에서 교화를 했다. 그리고 김도형 교무님은 그런 상황에서도 어린이 및 학생법회를 살려냈다.

교무님은 설교나 법회는 일찍 끝내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물론 나도 일요일이면 항상 교당에 왔다.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했고, 일요일에 교당에 온 동생들과도 열심히 놀아줬다. 의외로 어린이들과 놀아주는 게 엄청 힘들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까? 업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방석에 파묻혀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면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같은 자리에 세 번씩 숨어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숨바꼭질도 해야 한다. 그것을 누가 한다? 바로 ‘내가’ 한다.

‘원불교는 나에게
무슨 존재일까’
내 마음 상태를 가장 먼저
알려주고 위로받고 싶은 곳.

어린이회장은 고난이도다. 앞서 설명했다시피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혼자일 때보다는 훨씬 낫다. 왁자지껄하고 시끌벅적하니까. 거의 혼자나 다름이 없었을 때를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잘 모르겠다. 교당 어디에서도 웃음소리가 나오지 않았을 때 정말 어색했는데…. 코로나19 기간 때는 혼자나 다름없어서 항상 심심하고 외로웠다. 그때 나는 왜 교당에 나왔을까. 집에서 스마트폰을 보면서 놀거나, 친구들과 약속을 잡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처음에는 엄마가 교당에 가라고 하니 의무적으로 갔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됐다. ‘나는 왜 교당에 간 걸까?’ 아픈 교당, 없는 친구, 심심한 법회… 나는 그런데도 교당에 갔다. 교당이 걸린 병, 인원수 부족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애쓰면서 말이다.

원불교는 어느새 가족의 일부분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나는 원불교가 가족이 된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가족이라면 아파도, 심심해도 항상 곁에 있는 게 당연함에도 나는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의, 우리 가족의 일부분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원불교는 나에게 무슨 존재일까’를 생각해봤다. 내 생각에 원불교는 나와 우리 가족의 일부분이자 마음상담소다. 내 마음 상태를 가장 먼저 알려주고 위로받고 싶은 곳이 원불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불교는 내가 내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게 돕기도 하고 잘 사용하는 법도 알려준다.

가족만큼이나 친근하고, 마음상담소만큼이나 편안한 종교. 이렇게 좋은 종교를 또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내 이름은 이정륜, 자랑스러운 원불교의 일원이자 서울교당의 교도, 그리고 어린이회장이다. 나는 원불교를 만나서, 만났기 때문에 행복한 행운아가 됐다.

/서울교당

[2024년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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