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6개월 아기를 키우는 중입니다. 우리 아기 너무 예쁜데 너무 예쁜 만큼 너무 힘이 듭니다. 특히 아기가 울고 보채서 자야 할 때 못 자고 먹어야 할 때 못 먹고,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못 누릴 때 너무 힘이 듭니다. 가장 힘든 건 이렇게 마음이 자주 요란해져서 너무 예쁜 우리 아기를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저 자신을 볼 때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A.
아기도 한 살, 엄마도 한 살입니다. 육아의 어려움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아이로 인해서 엄마의 일상이 깨졌습니다. 나는 없고 대신 6개월 아기에게 온통 맞춰졌습니다.

일과를 마치면 소파에 깊숙이 앉아 피로를 풀고 싶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도 갖고 싶고, 아침은 졸린 눈을 비비며 모닝커피로 여유롭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런 작고 소박한 일상이 사라졌습니다.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데 작은 행복마저도 현재는 사치로 다가옵니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들이 무척 많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더 기다렸다가 낳을 걸 하는 후회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마냥 귀엽고 사랑스러워야 할 아기가 원망의 대상이 되니 미안하고 힘듭니다. 엄마로서 자격이 부족하다는 죄책감마저 듭니다.

<정전>에 고락에 대한 법문이 있습니다. 고락에 대해서 사람들은 고는 피하고 락을 찾으려고만 하는데, 먼저 그 원인에 대해서 생각하라고 합니다. 영원한 고인지 락으로 변할 수 있는 고인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육아로 일상이 지치고 힘들지만 탄생은 부모가 도약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람이 나약한 존재를 대할 때 그 사람의 인품이 드러납니다. 아기를 부처로 대할 때 엄마는 부처님의 어머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나 없으매 큰 나 드러나고” 원불교성가 138장의 가사입니다. 아기를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을 돌려 아기를 포함한 가족을 향해 큰 공부로 큰 사랑을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도 소중하지만, 지금은 큰 사랑으로 이겨낼 때입니다.

노자는 “아이들은 다듬지 않은 통나무와 같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힘없고 나약한 존재로 바라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이 세상 아무것도 그것을 신하로 부릴 수도 없고, 심지어 왕이 아이들을 잘 대하면 만물은 스스로 모여들어 따른다고 했습니다. 집안에서 왕은 누구일까요? 부모님이라 볼 수 있겠지요. 부모님이 아이들을 잘 대하면 만물은 스스로 모여든답니다. 하늘 사람인 아기에게 천록이 잦아드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힘든 육아를 혼자만 감당하게 하지 말고, 가족과 주변 인연들이 함께 나누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2024년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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