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신이랑 무당이 제일 바쁜 시즌 중 하나가 새해다. 온갖 소망, 바람, 다짐, 계획을 세우고 꼭 이루게 해달라고 신에게 딜을 하거나 강한 부담을 준다. 이쪽에서도 이기게 해 달라, 저쪽에서도 이기게 해 달라, 양쪽 다 간절히 기도해대니 신이 퍽 난감하겠다. 누가 더 간절히 하는가, 누가 더 많이 냈는가, 누가 더 노력하는가를 보는 것일까. 결과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니,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행운판 빙 돌려, 복불복으로 정하시려나.

점이나 사주를 봐서 쉽게 결과를 알아보려는 어리석음에 비하면, 기복적이라도 기도는, 노력이라도 곁들여지니 그나마 나은 편이다. 

동네에 사는 용한 점쟁이 아줌마가, 내 사주가 좋다며 원하지도 않는데 술술 음부공사를 흘려줬다. 복채도 안 받고 선의로, 게다가 듣기 좋은 말만 해줬지만, 20대의 신출내기 교무에게 호된 훈계만 들었다. ‘남의 앞길 미리 말해 액운을 다 막아줄 수 있냐, 일어날 일은 어찌해도 다 일어난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그때그때 겪으면서 힘과 지혜를 얻으며 살도록 해야지, 막아주지도 못하면서 미리 좋다 나쁘다 말해, 괜한 불안과 허영을 심어주는 일을 왜 하냐’며, 어른을 앉혀놓고 조곤조곤 가르치니, 꼼짝없이 웃으며 수긍할 수밖에….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한다고 꼭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가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라, 원을 세우고 기도는 하되, 결과에 대한 불안한 기대는 접고, 진리의 의도에 내맡기고 편히 지내라는 말이다. 일정부분 내 의지가 보태지는 면이 없진 않지만, 기도의 결과가 반드시 노력이나 물량 투입의 총량에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뜻을 세워 기도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되,
결과는 관여하지 말고
진리에 맡기라.

과도한 기대 없이, 양쪽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결과를 다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길이며 참된 기도다. 참된 기도는 간절하되, 온전히 맡기며, 마음을 비워 결과를 받아들일 힘을 키우는 시간이다. 

케 세라, 세라. 스페인 말로 일어날 일은 어떻게 해도 일어나니, 내버려 두고 살라는 뜻이다. 자칫, 체념하거나 막살아도 된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열심히 하되 결과는 신이 알아서 할 것이니, 미리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절망하지 말라는, 지혜로운 삶의 태도이며 최고의 위로다. 뜻을 세워 기도하거나 열심히 노력하되, 결과는 관여하지 않는 케 세라, 세라로 살면, 진리가 알아서 가장 적절한 삶으로 인도해준다. 최선을 다하되, 집착이나 기대 없이 진리에 맡기고 살면, 삶이 편안하고 마음에 일이 없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온전히 받아들일 힘을 얻는 것 자체가, 기도의 응답이며 위력이다. 이렇게 해달라 저렇게 해달라 요구하는, 소위 기복적 기도는 방편으로는 할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케 세라, 세라 하고 진리에 툭 내맡기는 것이 좋은 기도다. 기복적 기도는 불안과 좌절과 탓과 자책을 가져다준다는 사실. 

원하는 것이 따로 없으면 불안도 걱정도 없다. 지금 원이 이뤄진다고 반드시 끝까지 좋을지는 알 수 없다.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좌절하고 가슴 아파할 일도 아니다. 내가 지금 맞이하는 모든 것은 진리작용이며, 배움과 성장의 과정이라 늘 은혜뿐, 잘못된 일은 없다. 

깨달아 수행하는 이에게도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인과 작용에 의해 일어날 일은 다 오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쁘다는 생각 없이, 일체를 은혜로 보는 태도가 다를 뿐이다. 매 순간 딱 맞춘 가피를 받고 있으니, 진리 품에 다 내맡기고 언제나 케 세라, 세라!

/변산원광선원

[2024년 1월 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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