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소태산 대종사님은 그동안 너무 멀리, 높이, 벽 속에만 계셨어요. 그런 분이 점점 내려오고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순례를 하면 할수록, 스승님이 가까이 느껴져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서울교화 100년인 올해 서울원문화해설단장을 맡은 박혜현 교도(정릉교당 교도부회장)다. 원불교의 서울성적지를 가장 많이 톺아본 교도, 1920년대 사료를 가장 많이 봤을 교도. 그리고 서울성적지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안내했을 박 단장. 한 글자 한 글자의 고증과 해설을 위해 매주 공부했고, 요청이 오는 대로 길 위에 섰다. 지난해 한 해만도 22번 해설, 그렇게 꼬박 9년이다. 
 

성지해설단 1기로 9년 역사 올곧은 정성… 지난해 22번 해설
멀고 높았던 소태산 대종사를 가까이서, 수많은 일화와 역사 전해
올해 다양한 이벤트와 해설단 2기 해설사 데뷔, 광화문코스 공개

어떤 날은 비가 오고, 또 어떤 날은 차가 많고
“막내가 대학에 가자마자 순례단 모집 공고를 봤고, 그 길로 1기가 됐죠. 원기100년 11월부터 원기101년 3월까지 5개월 동안 매주 서울교당과 서울회관에서 공부했습니다.”
아직도 가슴이 뛰는 교단 100년 성업, 그는 북촌길과 낙산길을 수없이 오가며 그 거룩함을 함께 했다. 혼자 나만의 시나리오를 쓰고, 거울 앞에서 연습하기를 수십 번. 그는 날도 화창한 ‘참 좋은 날’에 데뷔했다. 4월 26일, 서울원문화해설단 첫 공식 해설이었다.
“30명을 모시고 순례를 했는데 떨리지는 않았어요. 다만, 배웠던 것을 다 전하는 데 집중했죠.”

원래가 준비성 있는 성격인데다, 요행 없이 정석대로 밟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길 위의 해설이 어디 늘상 같은가. 어떤 날은 비가 오고, 또 어떤 날은 차가 많고, 그도 아니면 왠지 어수선하고, 혹은 말하는 대로 길에 착착 붙기도 했다. 그렇게 숱한 경험을 거치며 그는 임기응변이 늘었으며, 분위기에 따라 부연과 생략, 강조도 자유자재로 하게 됐다. 가장 어린 중학생들이 왔을 때는, ‘이공주 선진의 법호는?’ 같은 퀴즈도 준비했다. 

“열반하신 감산님(고문기 원정사)이 순례를 하러 오셨을 때도 생각나요. 연세가 있으셨고, 바쁘기도 하셨는데 어떻게든 하고 싶다며 그 복잡한 북촌을 에둘러 돌면서까지 차로 함께 하셨어요. ‘저렇게까지 보고 싶으시구나, 한번이라도 더 선진들의 혼을 체받고 싶으시구나’ 싶어 뭉클했죠.”

성적지 환수를 위해 금모으기 운동을 할 때, 한 차로 여성 원로교무들이 올라왔다. 그때, 670만원과 함께 그에게 건네진 종이에는 1번 누구누구 얼마, 2번 누구 얼마… 해서 68번까지 써있었다. 100년 전의 선진님들을 실제로 보고, 모시고 살았을 원로교무들의 정성에, 그는 그 명단을 아직까지도 순례단 1호 보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원기109년 1월 5일 서울성적지 순례에서 안내하고 있는 박 단장.
원기109년 1월 5일 서울성적지 순례에서 안내하고 있는 박 단장.

후진으로서의 감사와 반성, 감탄과 부끄러움
“처음 몇 년간은 솔직히 서운한 게 컸어요. 왜 이렇게 안 찾아줄까, 왜 이렇게 잘 안 들어줄까 해서요. 하지만 이제는 와주는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해요. 어느새 그런 마음이 됐네요.”

그래서일까, 이제는 해설을 하며 울컥울컥 하는 순간도 생겼다. 북촌의 대궐같은 집과 사회적 지위를 다 놓고 어떻게 진리 하나만 믿고 출가를 할 수 있었나, 그 거룩한 서원과 인생을 우리는 후진으로서 제대로 모시고 있나 하는 감사와 반성, 감탄과 부끄러움이다.    

“어떻게 이렇게도 혁신적이었나 싶은 일화들이 많아요. 원기11년 조갑종 선진, 원기12년 김영신․박길선 선진님을 경성부기학원에 보낸 일은 당시로서는 정말 파격적인 결정이에요. 훗날 일제가 꼬투리 잡을 것이 회계 문제일 것을 미리 내다 보신 거죠.”

그의 ‘소태산 대종사 일화 자랑대회’는 계속된다. 공양원 조전권에게 직접 책을 사주며 읽고 쓰기를 권한 데서는 다정한 삼촌의 모습이요, 경성출장소 울타리를 손수 고친 일화에서는 든든한 아버지다. 밤낮으로 공부하는 제자들을 위해 무더운 여름 서과(수박)를 올려보낸 일은 세련된 오라버니의 모습이 아닌가.  

“당시 부모 3년상을 49재로 바꾼 것이나 타자녀교육과 무자력자를 구제하는 은부모 시자녀 제도에서는 시대를 앞서는 혜안과 바위같은 결단력을 볼 수 있어 조선박람회에서 본 기계인간, 화재보험 같은 신문물을 설법으로 전해주신 섬세함도 있고요.”

그러니 그는 설레고도 바쁘다. 기록의 중요성을 안 초기 선진들 덕에 많은 자료가 남아있지만, 날로 밝혀지는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도를 높여가는 것. 고신문을 검색하고, 한 글자 한 글자 대조하는 그의 손과 눈은, 100년 전을 더 밝게 비추는 돋보기이자 현미경이 된 셈이다.
 

원기101년 4월 26일 북촌 첫 해설 때.
원기101년 4월 26일 북촌 첫 해설 때.

그가 전하는 순례 잘하는 팁
“이제는 2기 해설사가 선발돼, 매주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2월 말이면 연습이 끝나고, 3월이면 새로운 해설사가 더 보완된 내용으로 길 위에 섭니다. 하반기에는 4번째 광화문 코스도 공개돼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서울 오신지 100년 된 올해야말로, 서울을 순례하기 더없이 좋은 해죠.” 순례를 잘하는 팁도 전한다. 7~10명 정도일 때 집중도가 높으며, 해설단 자료 혹은 ‘소태산 대종사 10대 여제자’에 대해 공부하고 오면 더 생생하다는 것. 더불어 서울교화 100년인 올해는 소태산 대종사 서울 첫걸음 기념 챌린지나 성적지 보고대회 같은 특별한 이벤트도 열린다. 100년 전 소태산 대종사가 서울에 온 까닭을 밝히고 그 뜻을 이어가는 서울원문화해설단. 이들과 함께라면 이 땅에 어린 교단 100년의 역사가 이토록 가깝다.

[2024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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