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 빈 필하모닉

 

해마다 1월 1일 11시 15분(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빈의 황금홀*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관현악단(이하 빈 필) 신년 음악회는 지구촌 클래식 팬들이 기다리는 연례 행사입니다.  
*황금홀(Goldener Saal):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의 6개 콘서트홀 중 빈 필하모닉의 연주 홀인 대공연장의 별칭. 

언제나 그렇듯 지휘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오케스트라 자체의 독립성을 위해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는 관례가 있기 때문이죠. 올해는 드레스덴 슈타츠 카펠레의 지휘자인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2019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많은 연주단체가 신년 음악회를 열지만, 역사와 전통에서 빈 필 신년 음악회를 뛰어넘는 이벤트는 없을 것입니다. 나치의 선전부 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지원을 받아 클레멘스 크라우스 지휘로 1941년 1월 1일 개최된 것이 그 효시입니다. 처음엔 다분히 정치색을 띠었으나 지금은 전 세계 클래식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올해 프로그램도 전통대로 요한 슈트라우스 가문의 왈츠와 폴카 등 춤곡 중심이었는데 18곡중 9곡이 새롭게 발표됐고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빈 필 최초로 그의 작품이 연주됐습니다. 위성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실황 중계된 빈 필 신년 음악회는 지중해에 있는 꽃의 도시 산레모의 플로리스트와 정원사들이 기부한 30만 송이의 꽃으로 화려하게 장식됐습니다. 황금홀을 가득 메운 청중들을 보니 2021년 리카르도 무티가 지휘했을 때 코로나19로 인해 무관중으로 진행된 것과 비교돼 격세지감이 들었습니다. 

그리스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1870년에 덴마크의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세운 황금홀은 2,000석(입석 300석 포함)의 규모를 갖춘 세계 유수의 공연장으로 역사와 함께 숨을 쉬는 공간입니다. 명지휘자 브루너 발터가 “이곳에서 비로소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았다”라고 극찬한 홀이기도 합니다. 2016년에 필자도 관광 길에 가본 적이 있는데 수많은 명연주의 역사적인 현장에서 직접 들어본 음향은 정말 놀랍도록 자연스럽고 시설 또한 고풍스럽고 훌륭하더군요. 

빈필 신년 음악회의 곡들은 요한 슈트라우스 등 주로 자국 출신 작곡가들의 왈츠나 폴카 등이 선정되지만 앙코르곡으로 연주되는 2곡은 해마다 변함이 없습니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새해 인사를 한 뒤 연주를 시작하는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과 지휘자가 돌아서고 청중들은 손뼉을 치며 함께 박자를 맞추는 전통으로 유명한 ‘라테츠키 행진곡’입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은 1866년 비스마르크가 이끈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해 오스트리아의 사기가 땅에 떨어지자 빈 남성합창단의 지휘자 헬베크가 오스트리아 국민의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의뢰하여 만든 곡입니다. 추운 겨울 얼음을 뚫고 흐르는 다뉴브강물처럼 그들의 애국심에 불을 지폈을 것입니다. 

반면 ‘라데츠키 행진곡’은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가 당시 합스부르크 영토였던 이탈리아에서 독립전쟁이 일어나자 이를 평정한 장군의 이름을 붙인 곡입니다.(이탈리아 출신 지휘자는 이 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겠지만 리카르도 무티는 2021년 신년 음악회에서 개의치 않더군요.)

한 곡은 전쟁에 져 무너진 오스트리아인의 자긍심을 일으키기 위해 만들어졌고 다른 한 곡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장군의 이름에서 유래됐다니 참 아이러니하지요? 부자(父子)이면서 경쟁 관계였던 요한 슈트라우스 1, 2세의 작품인 것도 특이한 일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2024 빈 필 공연 실황

 

빈 필 신년 음악회는 클래식으로 시작되는 빈의 일상과 다양한 음악 유산을 보여주면서 이제는 오스트리아를 넘어 세계적인 클래식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비록 순수하지 않은 의도로 시작됐지만 이를 버리지 않고 문화 아이콘으로 재탄생시킨 오스트리아인들의 현명한 선택이 돋보입니다. 

‘라데츠키 행진곡’의 힘찬 박수와 함께 교단 4대가 시작됐습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전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고 우리의 현실도 녹록지 않습니다. 새해의 새로움은 날에 있는 것이 아니요,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법문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얼어붙은 강 아래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처럼 희망찬 마음으로 새로운 날들을 이어가야겠습니다. 
 

오로라 - 구름나무 / 일러스트: 서혜진(구름나무) https://m.blog.naver.com/cloud7ree
오로라 - 구름나무 / 일러스트: 서혜진(구름나무) https://m.blog.naver.com/cloud7ree

글쓴이: 서기열(상보) <<내 마음의 클래식>> 저자 (https://m.blog.naver.com/skls09)
소태산 홀 <해설이 있는 클래식> 진행, 은덕문화원 소재 마고 카페 및 강남교당에서 클래식 프로그램 해설, WBS 원음방송 <내 마음의 클래식> 진행

/죽전교당

[2024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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