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이 몸 안에는 따로 주인인 내가 없다. 마찬가지로 일체 우주 만물도 각각의 주인이 없다. 모든 체인점에는 주인이 없다. 밤낮도 없이 일 년 365일, 주인이 없는데도 아무 탈 없이, 매 순간 완벽하게 운영된다. 본점 주인인 진리가, 이 심신을 비롯해 우주 만물이라는 체인점을 일시에 직접 운영한다. 

우주 만물 모든 것은 본점인 진리의 소유다. 진리가 모든 우주 만물의 경영자다. 모두가 진리의 것이며, 역으로, 그 진리는 모두의 것이다. 하나의 진리를 우주 만물이 공유한다. 따로 저 위에 있는 진리를 가져다 쓰는 것이 아니라, 안팎도 경계선도 없이, 모두에 가득한 진리가 일시에 우주 만물을 직영한다. 

체인점들의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화내는 모든 작동은, 따로 있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본점, 본원에서 직접 한다. 꽃피우고 태어나고 자라고 사라지게 하는 일체를, 다 본점에서 하나인 주인이 한다. 모든 감정도 따로 있는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우주 만물, 천지자연, 온갖 생명의 정신적 육체적 모든 작용, 물질의 생성과 소멸 그 모두를 다 본점 주인이 직접 한다. 

이 순간, 그러함을 100% 믿으면 바로 견성이 일어난다. 지금 이 글도 체인점 주인인 내가 읽고, 체인점 주인인 내가 이해한다고 알고 있지 싶다. 독립된 읽는 자, 독립된 생각하는 자가 없다고, 그 믿음 하나 일으키면 끝인데 원.
 

본원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사은인 처처불을 대하는 것이,
참 신앙이며 불공.

일체를 태어나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웃게 하고, 의식이나 감정을 일으키는 자도, 천지·부모·동포·법률의 본원이 한다. 이 명확한 사실을 지금 이 순간, 머리가 아니라, 우주 허공이 되어 믿고 받아들이면, 한순간에 보는, 견성(見性)이 된다! 보는 것이지 알거나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다 알겠다’ 하지 말고, 텅 빈 허공이 나임을 오롯하게 느끼며 보라. 진리는 보는 견(見)성이지, 아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은 참으로 아무 의미가 없다. 

한순간도 본원의 작동 아닌 것이 없다. 지금 한번 웃어보라. 본원이 직접 웃고 있음을, 일심 상태에서 믿고 느끼라. 다시 웃어보고, 손도 한번 흔들어보며 ‘이걸 본원인 일원이 직접 하네! 와, 신기하네! 그러네! 그러네!’ 하며 다시 또다시 해보라. 될 때까지 계속 두드리면 반드시 열린다. 다른 존재의 움직임도 본원에서 직접 함을 믿으며 유심히 바라보라. 어느 순간엔가 확 열릴 것이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쩌라고? 자, 흥분하지 말고 그다음은, 그 상태를 떠나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체인점에 들어가 문 닫지 말고, 체인점 사방팔방을 늘 우주로 활짝 열어두라. 본점 주인의 입장을 떠나지 않고, 체인점인 육근을 직접 경영하며 잘 지내면 된다. 

진공이 본점인 성품이며, 체인점이 육근작용인 묘유다. 본점에서 체인점을 직접 작동시킴이 진공묘유다. 성품을 깨달아, 성품인 본점을 떠나지 않고, 육근인 체인점을 운용하는 것이,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 참 수행이다. 그 본원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사은인 처처불을 대하는 것이, 참 신앙이며 불공이다. 

우주 만물은 이름은 각각 다르나, 둘 아닌 하나의 진리가 운영한다. 그 하나가 모두의 주인이라, 하나님이며 주인님이다. 호칭이야 정확한데, 단지 저 위에 따로 있는 임을 맹신하는 바람에, 깨달음과 정반대 방향으로 맹렬히 달려가는 어리석음이 안타까울 뿐.

/변산원광선원

[2024년 1월 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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