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서 시작된 한복웨이브, 생활한복·장신구에도 관심
성균관에선 유복, 경주에서는 신라복 등 지역문화와 결합
100년 역사 익산성지, K-의복 체험의 특별한 배경으로 기대

출처: Mnet ‘스트릿우먼파이터2’ 방송화면 캡처.
출처: Mnet ‘스트릿우먼파이터2’ 방송화면 캡처.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딱 1초만에 K-흥부림을 불러내는 불세출의 명곡 ‘범내려온다’를 기억하시는가. 당시 이날치의 노래만큼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뮤직비디오도 열풍에 한 몫을 했다. 영상에서 이들의 어깨춤만큼 세계를 훅 끌어당긴 것이 또 있었으니, 바로 의상. 사극에서나 봤던 전통 의상을 딱 ‘요즘 애들’ 옷과 맛깔나게 버무려, 이 친밀하고도 낯선 그림이 ‘훅’ 왔다. 그간 물오르던 망울이 투둑, K-의복이 활짝 핀 순간이었다.

말 나온김에 자세히 들여다보자. 빨간색 정장 위에 쓴 위엄있는 장군모, 짤뚱한 한복치마와 매치한 족두리, 오버로크로 멋낸 털배자와 매치한 주립. 여기에 갓, 볼끼, 노리개, 상모, 두루마기에 더해 소매자락도 색동으로 달아냈다. 

정자에서 뛰놀던 방탄소년단의 두루마기
K-의복은 본래 K-팝에서부터 심상치않았다. 서구적이거나 전위적이던 아이돌 의상이 세계로 나가면서 한복을 활용했고, 이 전략이 제대로 통했다. 2018년 방탄소년단은 ‘아이돌’ 뮤직비디오에서 두루마기와 한복을 입고 정자 속을 신나게 뛰어다니며 K-의복의 서막을 알렸다. 이후로도 방탄소년단은 한복을 자주 입었는데, 슈가는 아예 사극 한편을 옮겨놓은 듯한 ‘대취타’ 뮤비를 선보였고, 정국은 공항패션으로 생활한복을 꾸준히 입어 세계 아미(방탄소년단 팬)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간 ‘동양풍의 의상’이라면 기모노나 치파오만 떠올리던 세계인들은 ‘한복(Hanbok)’이라는 글자를 제대로 발음하고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 바통을 물려받은 것은 블랙핑크다. 한복을 크롭티(허리가 드러나는 짧은 상의)와 미니스커트 등으로 변형시키면서도 특유의 분위기나 특색을 살려낸 결과, 젊은 세대들이 “한복이 이렇게 힙하다니!”라며 열광한 것이다. 

K-필름 열풍도 K-의복 인기를 견인했다. 드라마 <연인>부터 <혼례대첩>, <철인왕후> 등의 드라마가 각종 OTT사이트에서 인기를 끌면서, 촬영지에서 주인공 의복을 체험하기 위해 기꺼이 비행기를 탄다. 전국 곳곳에 장소나 역사의 스토리텔링을 활용한 체험도 각광을 받는다. 경주에서는 화랑복 등 신라시대 의복, 옛 모습이 남아있는 인천 차이나타운에선 옛날 교복이 인기다. 보통 이 같이 역사적 배경이나 건축물, 촬영스팟 등의 요소가 잘 어우러져야 그 의복이 설득력을 지닌다는 평이다.
 

의복, 역사·건축물과 어우러져야 설득력  
K-의복의 유행은 우리의 일상도 바꿔놓았다. 서양식 일색이던 웨딩사진에 한복드레스가 등장했고, 관공서 유니폼이 전통 문양을 차용했다. 가장 크게 바뀐 풍경은 외국인들의 한복 체험이다. K-건축, K-고궁 훈풍에 힘입어, 한복체험을 ‘한국 관광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예전엔 그냥 화려한 한복 위주였다면 이제는 곤룡포, 혼례복, 무사복, 포졸복 등 신분도 다양하다.

한복에 이어 K-장신구도 인기몰이다. 세계 무대를 누비는 한국 스타들이 전통 의상 소품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오징어게임>의 히로인인 정호연이 미국 시상식에서 댕기머리와 가르마 앞쪽에 얹는 첩지를 선보였고, 아이브 장원영은 프랑스에서 봉황모양의 비녀 봉잠을 꽂아 K-장신구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이제 K-의복은 더 넓게 더 멀리 나간다. 한복 제작업체 ‘아란스토리’는 백제 문화재로 디자인된 ‘백제의 영광 허리치마 문화제 한복’을 만들었다. 이 치마에는 백제 금동대향로와 풍납토성 출토 동전무늬 수막새, 무령왕과 왕비의 관꾸미개 장식 등이 새겨져있다. 훈민정음을 바탕으로 한 ‘나랏말싸미 저고리’와 6갈래 치마도 인기다. 

반려동물 인구 1,500만 시대, 반려견도 한복을 입는다. 고운 색감에 고름도 달려있고, 강아지용 망토와 짧은 목도리까지 소품도 다양하다. 한복의 자투리 원단으로 만든 가방과 파우치로 업사이클링을 하기도 하고, 한복 패턴의 스트릿패션도 늘어나고 있다.
 

원불교 성지와 K-의복의 콜라보   
성균관에 와서 유생 의복 유복부터 입고, 경복궁에서 구찌 패션쇼를 보는 시대. 이제 K-의복은 한국의 건축물이나 풍경에 녹아든 중요한 관광 콘텐츠가 됐다. 이런 흐름 가운데, 100년 전 건물과 문화가 비교적 잘 살아있는 원불교 익산성지는 K-의복을 특별하게 담아낼 수 있는 배경으로 기대를 모은다. 개화기 의상을 입고 1920~1940년대 건물인 송대나 공회당을 거닐거나, 원불교 교무 정복이나 두루마기 차림으로 성지에 머무른다면 어떨까? 영산에는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대각전과 조선시대 과거시험이 치러지던 전 서울교당 건물 융문당에 녹아있는 분위기는 그 어디서도 흉내낼 수 없다. 

원불교 성지와 역사와 K-의복이 어우러지는 경험은 특별하고 영성적인 시간여행이 될 수 있다.


세계는 K-의복에 이렇게 주목했다

이른바 ‘한복 웨이브(Hanbok Wave)’로 불리는 K-의복의 활약 가운데, 2022년 미국 최초 한국의복 125년사가 소개됐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한국 의복-궁중에서 런웨이까지’ 전시회를 조지워싱턴대학교에서 장장 4개월간 전시한 것이다. 

이 전시에는 시대별 85점의 의상과 최신의 K-팝 패션을 담은 디지털 작품이 소개됐다. 그 가운데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출품됐던 조선시대 일상복과 연례복 20여 점도 눈길을 끌었다. 

이 전시는, K-의복을 향한 미국 및 세계의 관심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고 평가된다. 참가자들은 보자기 만들기 워크숍, 자수 워크숍, 한국 의복의 인문학적 접근, K-팝 댄스 세션에 적극 참여했다.

[2024년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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