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희 교도 
전정희 교도 

원기109년, 교단 제4대의 문이 활짝 열렸다. 식민지의 혼돈기에 태동한 원불교는 지난 100여 년 동안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차분하게 대응해왔다. 이제 새로운 한 시대가 열리는 이때, 세상은 더욱 복잡다단해졌다.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향후 맞이하게 될 여러 가지 도전들은 더 급격하고 변화무쌍할 것이다. 

과학의 발전과 물질의 풍요는 우리에게 일상의 편리함을 제공했지만 물신(物神) 숭배가 만연해져서 사람 사이의 윤기는 빛이 바랬고, 가족의 끈끈한 유대도 많이 해체돼 버렸다. 빈부 간의 격차, 깊어진 사회적 갈등, 도덕의 붕괴, 불합리한 교육, 저출생 등으로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일찍이 소태산 대종사께서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고 하셨지만 물질과 과학의 발전 속도를 정신문명이 따라잡지 못해서 온갖 병폐가 드러나고 사회 불안은 가속화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AI), 로봇, 디지털 혁명 시대가 도래했지만 인간의 정신은 더욱 피폐해졌다. 물질의 진화로 정신은 더욱 그 심연에 깊이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낯설었던 것들이 어느새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와 있다. 유튜브나 SNS는 자주 찾는 프로그램, 정보, 뉴스를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분야를 계속 접하다 보면 확증편향에 빠지기 쉽다. 왜곡된 여론조사, 그럴듯한 가짜뉴스, 상업적 광고들에 의해 이성은 마비되고 판단 능력은 흐려진다. 

그러다 보니 진실과 거짓의 경계도 허물어졌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도 판별하기 힘들다. 올해 CES(세계가전전시회)나 다보스포럼에서 주제를 석권한 인공지능(AI)은 새로운 문명사를 써내려 가고 있지만 챗GPT는 인간에게 참과 거짓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교단 4대를 열면서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문명의 이기(利器)들로 인해 느슨해져 가는 정신의 힘을 다시금 팽팽하게 다잡아야 한다. 어쩌면 그 일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처음 개교(開敎)하셨던 당시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때, 소태산 대종사께서 ‘세상을 이끌어가는 두 바퀴’라고 말씀해주신 종교와 정치가 모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자모와 엄부’의 역할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구상에서도 종교 간의 전쟁으로 중동 지역은 여전히 화염에 휩싸여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정치 지도자의 무모한 도발은 죄 없는 민간인들을 포탄 지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대종경> 교의품에 의하면 정치보다는 종교가 우선이다. ‘한 세상의 선(善)·불선(不善)을 좌우하는’ 종교와 정치는 “각 종교가 개선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개선될 것이요, 사람들의 마음이 개선되면 나라와 세계의 정치도 또한 개선”된다고 보고 있다. 

세상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어지러운 작금에 종교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며 종교의 역할이 요구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종교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많은 것이 넘쳐나고 변화의 속도에 대응하느라 정신적 피로 또한 극심하다.

종교는 사람의 정신세계를 다루는 것인데 ‘사람’이라는 주체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신인류의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일한 잣대로 세상과 사람을 재단한다면 종교가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 <대종경> 교의품에도 “수레를 자주 수선하여 폐물이 되거나 고장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시대를 따라서 부패하거나 폐단이 생기지 않게 할 것”을 밝히고 있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어떻게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마음을 얻을 것인가. 교단 4대를 열면서 깊이 고민할 대목이다.

/전북여성가족재단 원장, 이리교당

[2024년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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