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흔히 치매가 심한 이는 인식능력이 없으니 누가 함부로 대해도 모를 거라고 여긴다. 언젠가 이런 주제의 대화를 들은 어느 할머니 법사께서,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툭 내뱉은 말씀. “그걸 머리가 아는가, 성품이 알지!” 성품이 안다는 그 말씀은, 천둥처럼 큰 화두로 꽂혀 깨달음의 단초가 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일이라도 누가 알고 모르고와 상관없이 과보는 다 정확히 온다. 그걸 누가 한다? 그렇다! 바로 성품이 한다. 의식 너머 일체 존재의 모든 순간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 보고 다 알아서 정확히 갚아주는, 신령하고 위대한 것이 바로 성품이다. 성품인 내가 일원이며, 본원이며, 신이며, 부처다. 

일원은 제불·조사·범부·중생의 성품이며 그 성품은 하나다. 하나인 성품이 다 보고 알아 다 갚아주며, 일체 우주 만물을 모든 순간 작동시키는 본원이다. 본원이 곧 성품이니, 우주 만유의 성품이라 해도 맞고, 일체중생의 본원이라 해도 맞다. 그게 그거다.

일원이 우주만유의 본원이란 말은, 우주만물 모두 부처라는 뜻이라, 부처를 발견해 부처로 모시는 신앙의 근거가 여기 있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라고만 해도 다 해당되는데, 굳이 제불제성의 심인과 일체중생의 본성을 거듭 반복한 이유가 있다. 

우주만유 중에 그 본원인 진리를 깨쳐, 천지 기운을 돌릴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사람이다. 진리는 모두의 것이지만 깨달아야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본원이 곧 나임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에게, 특별제작으로 붙인 표현이 본성(성품)이며, 이는 깨달음과 수행의 근거가 된다. 성품의 이름이 따로 붙은 존재들은, 본원인 성품을 깨쳐, 윤회를 벗어나 자유를 얻을 능력을 이미 다 부여받은 셈이다.
 

본원을 떠나지 않은 상태로
사은인 처처불을 대하는 것이,
참 신앙이며 불공.

제불제성의 심인이란, 진리가 곧 나임을 이미 확인한 선각자들이 있다는 보증서이며, 그 깨달음의 내용이 동일하다는 뜻이다. 도장은 누가 찍어도 같은 모양이 나오듯, 마음을 깨달은 이들은 동일한 것을 본다는 말이다. 제불제성은 일원과 본원과 성품인 내가 같은 것임을 확인한 증인들이며, 깨달음에 대한 가슴 뛰는 롤모델이 되는 이들이다. 

제불제성이 될 불종자는 따로 없다! 모든 이의 성품은 동일하다. 우주에 성품은 단 하나인데, 제불·조사·범부·중생으로 나눈 것은, 부처나 너나 같으니 마음만 먹으면 곧장 제불이라고, 미리 유출한 답이다. 제불의 성품, 조사의 성품, 범부의 성품, 중생의 성품이 따로 있지 않고 단 하나의 성품이니, 어서 깨달아 괴로움을 벗어나라는 간곡한 당부가 여기 스며있다.

내가 곧 일원임을 확인해 자유를 얻은 이들과, 눈뜨려 하지 않아 괴로움을 윤회하는 이들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제불조사는 눈뜬 사람으로, 제불은 성품을 깨달아 자유자재하는 이들이며, 조사는 깨친 후 그 자리에 비춰 수행하는 이들이다. 범부중생은 눈뜨지 못한 이들로, 도를 알아들을 줄 아는 이는 범부, 탐진치와 업력에 끌려 귀 닫고 사는 이는 중생이다. 이 분류는 어디까지라고 똑 떨어지는 선을 그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략적 구분이며, 눈 뜬 이에게는 한순간에 단계가 사라진다. 같은 성품이니 단지 눈만 뜨면 곧장 부처다! 

말하고 생각하고 걷고 밥 먹는 이 심신의 운영은, 제불이나 조사나 범부나 중생이나 오직 하나의 성품이 한다. 일원, 즉 성품이 제불조사의 것이나 범부중생의 것이 원래 같으니, 견성 못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 하여, 그대가 반드시 깨닫는다는 데 거금 오백원을 건다!

/변산원광선원

[2024년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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