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길 KCRP 생명평화위원회 위원장
유정길 KCRP 생명평화위원회 위원장

[원불교신문=장지해 편집국장] 그가 불교를 만난 건, 20대 중반이다.
본래 ‘교회 오빠’ 그 자체였으나, 대학생 때 학생운동을 하며 피신 다니다 불교를 만났다. 그리고 불교 공부를 하며 그는 ‘충격적 감동’을 받았다. 특히 <금강경>에 담긴 ‘보살은 사상(아·인·중생·수자상)을 여의어야만 올바른 바라밀을 행할 수 있다’는 가르침은 그동안의 생각을 모두 뒤엎는 계기가 됐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위해서 일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불교에서는 ‘누구를 위한다’는 그 마음이 사고와 화를 일으킬 수 있고, ‘위한다’는 마음까지 없어야 진정으로 위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굉장한 충격이었죠.”
이후 자신을 돌아봤다. 거기에는 ‘시스템이 바뀌고, 네가 바뀌고, 구조가 바뀌고, 권력이 바뀌고, 사회가 바뀌어야 해’라며 모든 원인을 밖에서 찾는 자신이 있었다. 질문받는 대상을 내 안으로 돌려 물었다. ‘그럼 너는 바뀐 사회를 이끌어갈 준비가 됐어?’ 자문자답의 결론은 이랬다. ‘(이렇게 산다면) 무엇인가에 반대하는 소위 저항 주체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창조 주체가 되기는 어렵겠다.’

‘창조 주체’의 길을 유정길 KCRP 생명평화위원회 위원장(녹색불교연구소 소장)은 ‘자신을 바꾸는 노하우를 가진 종교’를 통해 찾았다. 그리고 ‘자신을 바꾸는 노하우’는 곧 ‘환경 위기 시대에 중요한 인류적 자산’이자 ‘특정 종교만의 자산이 아니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굉장히 좋은 노하우’라고 확신한다.

환경, 생명평화 등을 주제로 여러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환경에 관심 갖기 시작한 건 1990년이고, 1991년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 30년 조금 넘었네요. 이제는 단순히 오염을 정화하고 개발을 제한하고 환경을 깨끗하게 만드는 게 문제가 아니고, 무한한 성장,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가 문제의 핵심이라 그동안 산업사회의 모든 패러다임을 전 세계가 한꺼번에 바꿔야 해요. 그렇게 보면 궁극적으로 생명평화운동은  ‘개벽’이라는 말을 쓸 수 밖에 없어요.”

인터뷰 초반부터 그는 말했다. “원불교의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표어는 중요한 생명 운동의 원리”라고. “그동안 많은 사회운동가는 물질개벽과 정신개벽(마음)은 별개로 생각했지만, 연결돼 있다는 관점으로 보면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환경운동을 요즘에는 ‘생명평화운동’이라고 하던데요.
“환경운동은 본래 공해 반대 운동(반공해운동)으로 시작했어요. ‘사람이 피해를 봤다’는 게 초점이었죠. 그러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회의 이후 환경이라는 말이 본격 사용되는데, 사실 ‘환경’도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는 설명으로 보면 나와 주변을 구분하는 느낌이 있지요. 문제의 본질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으려면 ‘순환’의 의미를 담은 생태라는 말이나, 자본·사회주의와 구별되는 녹색이라는 말을 써야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겠더라고요. 깨달음, 수행, 영성, 각성 등과 같은 논의가 빠졌다는 생각이었죠.”

유 위원장은 환경운동 개념에 깨달음, 수행, 영성, 각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 변화를 따라갈 만한 인간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하기 때문’인 것. 밖을 변화시키는 동시에 나를 변화하는 과정이 함께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는 ‘생명평화운동’을 “내용은 사회적이지만 알고 보면 종교적 언어”라고 표현했다.
 

물질개벽․정신개벽은 생명 운동의 중요한 원리
새 시대 새 생명운동에는 ‘깨달음과 영성’ 필수

종교의 역할도 많이 강조되는데요.
“종교인이 생명평화를 가장 잘 소화할 수 있어요. 종교인은 사상적으로 ‘종교적 가치’를 갖고 있고, 늘 그 가치로 돌아가려고 하니까요. 또 한국 사회에서 정부 조직 말고 가장 잘 조직화 된 그룹은 종교밖에 없어요. 우리나라 종교들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연합해 본 경험도 가지고 있고요. 환경운동은 하면 할수록 더 종교와 깊이 결합 돼요.”
그는 지금의 환경 문제가 무한 성장주의를 바탕으로 한 무한 채굴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사람도 나무도 곡식도 어느 정도 키가 큰 후에는 성숙을 통해 품을 키우고 풍성해지고 영글 듯, 일정한 성장 뒤에는 성숙의 단계로 넘어가는 게 자연의 이치”라고 했다.

확산을 위한 노하우를 전해주세요.
“기본적으로 종교의 기본 내용에서 시작하면 좋아요. 불교라고 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시작하는 거죠.  ‘나무 덕분에, 풀벌레가 우는 덕분에, 구름이 있는 덕분에, 비가 와주는 덕분에…’ 이 모든 당연함이 은혜이고 고맙다는 걸 잊어서 지금의 위기도 생겼다고 봐요. 그래서 ‘은혜갚기운동’이 너무너무 중요해요.”

미래 종교,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종교’라고 하면 두 가지 모습이죠. 하나는 조직으로서의 종교, 하나는 담마(산스크리트어로 ‘법’, 깨달음의 진리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로서의 종교요. 영성이나 깨달음에 관심이 높아지는 걸 보면 많은 사람이 담마에는 관심이 있어요. 조직 종교가 담마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배척당할 것이고, 담마를 회복하면 회복할수록 미래 가치를 발현할 거예요. 결국 ‘자기를 변화시킨 축적된 노하우’가 관건이죠. 담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수행자가 얼마나 많은지, 담마를 통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사는지, 앞으로는 이것으로 종교의 미래 희망을 볼 거예요. 사람들은 이제 말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과 삶의 모습을 믿어요.”

환경 위기, 희망이 있을까요?
“환경 위기는 깨달음을 위한 중요한 메신저예요. 또 ‘이대로 가면 잘 될까?’ 하는 불안감이 있는데, 저는 이 불안감과 불투명성이 자산이라 생각해요. ‘앞으로 잘 될 거야’ 낙관만 하면 ‘이대로 살면 되겠네’ 하면서 깨달음 얻을 기회가 없을 텐데, 불투명성·불확실성이라는 안개가 껴있어서 우리가 하는 행동에 따라 바뀔 가능성이 있죠. 그래서 아직은 해볼만 해요.” 

인터뷰 말미, 그는 바닷물 염도가 3.5%임을 언급하며 비유해 말했다. “염도가 3.5%만 돼도 짠맛을 내는데, 우리나라 종교인구 비율은 절반이나 되잖아요. 종교인들만 ‘먼저’ 실천해도 세상을 바꿀 수 있어요. 종교 자체에 이미 그런 가르침이 있으니까요.”

[2024년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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