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1997년, 거짓말처럼 나라가 망했다. IMF경제위기가 온 국민을 집어삼키던 그때 남편이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후부터의 시간은 주식투자 실패, 빚보증 등… 온통 경계 뿐이었다. 당시 진귀은 교도(익산교당)는 인생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교당으로 향했다. “그때 교당에서 ‘세상이 나를 공부하게 하는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가 경계를 무사히 지나게 해준 힘은 바로 ‘동포은’이었다. 

그는 생계를 위해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을 운영하게 됐다. “동네 장사잖아요. ‘아이 키우는데 고생하네’ 하며 꼭 우리 가게에 들려주는 이웃들이 있었어요. 그 덕에 우리 딸 공부를 시킬 수 있었죠.”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가게 정리 당시 장부를 계산해보니 ‘딱 가르칠 만큼’ 벌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리고 이웃의 따뜻한 동포은 아래 착실히 공부에 전념한 딸은 ‘의사’가 됐다.

그 은혜를 입고 어찌 보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진 교도는 다시 가위를 챙겨들고 정화수도원, 상록원, 원광대학교병원 등을 찾았다. 가족처럼 알뜰살뜰 머리를 매만져주는 그의 손길에, 그의 ‘찾아가는 은혜 미용실’은 늘 성황을 이뤘다. 

그러다 진 교도는 교통사고로 척추를 크게 다치게 되면서 봉사를 멈추게 됐고, 후유증으로 인해 사고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되자 우울증을 겪었다. 골똘하게 몰두할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번 경계에서는 원광디지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라는 돌파구를 찾았다. 공부를 하며 활력과 재미를 되찾았다. “저는 사고가 한 단계 진급할 수 있었던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진 교도는 ‘우리 동네’ 복지사로 불린다. “배운 것을 기반해서 정보를 얻기 힘든 어르신들에게 매개체 역할을 하고 싶어요.” 몸으로 하는 봉사는 못하게 됐어도, 그는 ‘마음 봉사’는 할 수 있어 늘 행복하다. 

돌아본 인생에서 원불교는 항상 돌파구였고,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문이었다. 초등학교 때 “너는 동요를 유행가처럼 부르냐”는 선생님의 말에 입을 꾹 닫고 살아왔지만 어느날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어 원불교 원음합창단을 찾아갔다. “노래를 못 불러도 합창단을 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열심히 같이 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합창’, 같이 하는 힘이 쌓이니 정말로 트라우마는 한 겹씩 벗겨졌다. 

합창제 때마다 그는 꼬리빗 하나와 스프레이를 꼭 챙긴다. 단원들의 ‘머리뽕’을 책임지는 ‘우리 교구’ 미용사로 활약할 타이밍인 것이다. “여래까지는 못가도, 동포은 입고 살았으니 주변에 모범 되는 삶을 살아야죠.” 우리 동네 복지사이자, 우리 교구 미용사로 은혜를 맵시있게 가꿔내는 진 교도는 ‘오늘도 바쁘다, 바빠’.

[2024년 1월 1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