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이 되는 날, 비둘기와 함께 종이 완성된다.
통일이 되는 날, 비둘기와 함께 종이 완성된다.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5, 4, 3, 2, 1!” 환호 속에 울리는 종소리가 세상을 깨운다. 몸 전체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듣는 이의 몸과 마음도 함께 깨운다. 2024년(원기109) 새해, 종소리들이 전국 각지에서 울려 퍼졌다. ‘제야의 종’ 하면 떠오르는 서울 보신각뿐만 아니라 대구, 부산, 강원, 광주, 여수, 인천, 청주 그리고 원불교 익산성지에서도 새해 첫날을 기념하는 타종 행사가 이뤄졌다.

새해를 맞는 다양한 행사와 전통은 세계적으로 많지만, 타종 행사가 전국적으로 자리 잡은 곳은 동아시아에서도 한국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역을 떠나 오랜 역사 속에 ‘종과 종소리’가 한국인의 삶과 정서에 스며들어 왔기 때문일까. 이 종소리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깨우는 소리를 쫓아 발걸음을 옮겨본다.

시대 역량의 집합체, 한국종
일반적으로 ‘종’이라고 하지만 정확한 표현은 ‘범종(梵鍾)’이다. 범종은 <삼국유사>부터 등장해 한국인과 함께해 온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긴 역사를 품은 한국 범종은 학명으로도 ‘한국종’이라고 불릴 만큼 독자적인 양식을 갖고 있다. 

국내에 가장 오래된 종인 ‘상원사 동종’ 역시 같은 시기 중국, 일본의 종과도 다른 모습이다. 가장 큰 특징은 외관에 종을 거는 고리(용뉴) 옆에 대나무 모양의 음통이 있다는 점이다. 이 음통이 타종 때 생기는 종 내부의 잡음을 일부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또 종각이나 종루바닥에는 둥글게 판 ‘명동(鳴洞, 울림통)’이나 항아리를 묻어 종소리를 땅으로 품고 반사시켜 소리를 퍼트리게 했다. 

그래서 ‘둥!’하고 종을 쳤을 때 은은히 남는 ‘우웅~우웅~’하는 울림이 다른 나라의 종들보다 오래 유지된다. 이런 울림은 종 안팎에서 여러 주파수가 섞여 만들어진 것으로 ‘맥놀이 현상’이라고 한다. 과학의 발달로 소리의 주파수를 분석해 알게 된 맥놀이 현상을 지금같이 금형, 조음(調音) 기술이 없던 시대에 선조들은 구현해 낸 것이다.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한국의 종이다.
 

천년의 소리를 전하는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소리를 전하는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울림을 전하는 ‘성덕대왕신종’
한국종의 맥놀이 현상으로 가장 유명한 종이 바로 ‘성덕대왕신종’이다. 흔히 ‘에밀레종’이라고 알고 있는 이 종은 높이 3.6m 두께 11~25㎝, 무게 18.9톤의 대종으로, 통일신라 시기에 주조된 국내 최대의 고대 종이다. 이 종이 들려주는 ‘에밀레’ 소리가 바로 비대칭으로 빚어진 두께에서 비롯된 맥놀이 현상이다.

성덕대왕신종은 국보 제29호로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만날 수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을 찾은 이들은 전시관을 향하기 전 자연스럽게 성덕대왕신종으로 발길을 향하게 된다. 지역 어린이와 학생들에게는 현장학습의 마당으로, 지역주민에게는 어린 시절을 회상케 하는 타임머신이 되어준다. 

상원사 동종은 이제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성덕대왕신종은 아직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2004년을 마지막으로 타종은 중단됐지만, 녹음된 종소리가 매일 매시 정각, 20, 40분마다 재생된다. 녹음된 소리여도 널찍한 국립경주박물관 터를 울리는 종소리는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잠시나마 소란한 분위기를 잔잔하게 만들어준다.

김영조 경주문화해설사는 “우리는 실제로 치는 종소리를 많이 듣고 자라서, 녹음된 소리는 아쉽기만 해요”라며 “그 옛날엔 종을 치고 만질 수도 있었는데, 종이 울릴 때 손을 대면 아주 신비로운 진동을 느꼈던 기억이 나요”라고 추억담을 전한다.
 

천년의 마음을 담은 종소리로 ‘새해 새 마음’
세계의 종 가운데 유일하게 분류되는 ‘한국종’
시대역량과 대중의 마음 담긴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

세계 최대의 종과 하나가 되다
성덕대왕신종이 ‘한국 최대의 고대 종’이 된 건 2009년 완성된 강원도 화천군 ‘세계평화의종’ 덕분이다. 신라범종의 형태로 주조된 세계평화의종은 높이 4.6m, 지름 2.7m, 무게는 1만 관(37.5t)을 자랑한다. 

세계에서 칠 수 있는 종 가운데 가장 큰 종으로, 실제로 보면 크기와 존재감에 압도되는 기분이다. 종 이름에 담긴 평화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세계 30여 개 국가에서 전해진 포탄과 총탄의 탄피 등을 재료로 사용한 특별함도 숨어있다.

신라범종의 형태를 따랐지만, 그 조형은 사뭇 다르다. 연화(蓮花) 대신 평화의 꽃말을 지닌 데이지, 보살상 대신 월계수를 물은 비둘기 등 평화를 상징하는 메시지로 가득하다. 그리고 종을 거는 용뉴에는 4마리의 비둘기가 동서남북을 향해 앉아있는데, 한 마리의 한쪽 날개가 없다. 해설사는 “세계평화의종에는 남북통일의 염원도 담겼어요”라며 “그래서 1만 관 중 1관(3.7㎏)을 떼 날개로 만들고, 나중에 통일이 되면 지금 9,999관의 종에 날개를 달아 종을 완성할 예정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종을 쳐보기로 했다. 세계평화의종 타종은 3타가 기본이다. 1타는 분쟁 종식, 2타는 이념 간 갈등 해소, 3타는 종교 간 갈등 해소를 통한 평화를 뜻한다. 37톤의 종을 울리기 위한 당목은 그것대로 대단하다. 무게만도 200㎏. 온몸으로 당겨 종을 친다. 인적 없는 화천군 평화의 댐 위로 퍼져나가는 종소리가 산천을 울린다. 종에다 손을 대니 그 울림이 손과 발을 타고 머리를 꿰뚫는 듯하고, “종을 안아보세요”라는 해설사의 말을 따라 안아보니 종과 내가 한 몸으로 울리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세계 최대 크기 ‘세계평화의종’ 소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세계 최대 크기 ‘세계평화의종’ 소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다.

새해, 새 마음을 종과 함께

범종은 삼국시대 한반도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등장한 만큼 종교적 목적으로 조성된 것이 많다. 국가적으로는 나라의 안녕과 평화, 호국의 정신을 담기도 했고, 불교에서는 범종의 소리를 원음(圓音, 부처님의 음성)이라 비유해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까지 전해진 종들은 국가적 대불사로 이뤄져 수천수만 명의 정성과 마음을 품고 천년을 이어온 한국 정신문화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정신은 현대로 이어져 전국 곳곳에서 지역사회의 발전과 시민의 안녕을 기원하며 조성된 범종도 많아져 우리 일상과 함께한다. 아직 새해 새 마음을 차리지 못했다면 주변에 종플(종+플레이스)를 찾아 종소리에 마음을 합해보자.

 

♣ 원불교의 종

소태산 대종사는 차남 광령(길주)이 어린 나이에 열반했을 때 대각전의 종을 집으로 옮겨 걸고 종을 치게 했다. 이어 제자들에게 “영가들은 죽어도 죽은 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쇳소리를 들려줘야 제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종을 치고 법문을 듣게 했다”고 말했다. 정산종사는 <예전>을 통해 각 교당마다 ‘범종’을 비치하게 했다. 원불교도 창립기부터 범종으로 일체생령을 깨우고, 성불제중의 서원을 담아냈다. 원불교와 종의 이야기를 전해본다.
 

원불교 익산성지 원음각과 개벽대종.
원불교 익산성지 원음각과 개벽대종.

익산성지 원음각
원기32년(1947) 초량교당에서 희사받은 종을 총부로 보냈다. 그때는 종각이 없이 나무로 대를 달아 사용했다. 원기39년(1954) 한국전쟁 이후에 이리 중앙초등학교 옆 사찰의 종각을 총부 대각전 오르막길 옆에 이전해 종을 옮겨 달았다. 이후 종이 깨져 원기66년(1981) 남원교당의 종을 총부로 옮겨와 사용하다가 원기81년(1996) 새 종각과 종을 마련했다. 종명과 종각의 이름은 당시 종법사였던 좌산상사가 ‘개벽대종’, ‘원음각’이라 명명하고, 공의를 거쳐 정했다. 이후 지금까지 매일 아침과 저녁, 주요 의식을 알릴 때 타종을 하고 있다.

남원교당
남원교당은 원기54년(1969) 원불교 남원지부 범종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원기56년(1971) 금암공원 자리에 있던 옛 남원교당 종각에 세울 범종을 마련했다. 이후 아침저녁으로 타종을 이어오다가 원기66년(1981) 중앙총부로 이전해 사용했고, 완주 수계농원에 보관해 왔다. 원기106년(2021) 들어 남원교당은 남원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금암공원 내 성음각(聖音閣)에 범종을 재이전해 봉안했다.

광주교당
원기42년(1957)부터 광주시민의 사랑을 받던 광주교당 범종은 원기55년(1970) 태풍을 만나 종각이 기울어 종을 내리게 됐다. 원기58년(1973) 새 종각을 지어 다시 종을 걸었고, 원기65년(1980) 5.18 민주화운동 때도 교무들은 빗발치는 총탄을 무릅쓰고 그 소리를 울린 역사가 있다. 

중앙중도훈련원
중앙중도훈련원은 원기93년(2008) 원음각을 신축했다. 종각의 현판은 당시 경산종법사가 썼고, 범종은 원기47년(1962) 서울교당에서 사용되던 것이다. 원기91년(2006) 서울교당 법당건물 해체 때 영산성지로 옮겼다가 중앙중도훈련원으로 옮겨온 것이다.

[2024년 1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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