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혜연 활동가] 조용히 맞이한 1월 1일 새해에 별안간 마음이 요란해졌다. “지금 당장 대피하십시오! 도망쳐!”라는 말로 뒤덮인 일본 방송에 놀란 탓이다. 예전이라면 ‘큰일이네’하고 말았을 일에 유독 놀란 까닭은 핵발전소(원자력발전소)때문이었다. 실제로 지진이 일어난 이시카와현에 있는 핵발전소 일부에서 위험한 사고가 일어날 뻔했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아 다행이었지만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핵발전 붐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에 지어진 발전소는 대부분 사용 기간(설계수명)을 40년에 맞췄으니 이제 그 끝이 머지않았다. UN재난위험사무국(UNDRR)은 “2030년까지 전 세계는 하루에 약 1.5건, 연간으로는 약 560건의 극심한 자연재해를 겪을 것”이라 경고한다. 그럼 위험한 물질이 있는 이 낡은 시설이야말로 가장 취약한 곳 중 하나인데 우리에게는 확실한 대비책이 있을까? 

기후위기에 관심이 있다면, ‘1.5℃’라는 수치가 눈에 익을 것이다. 2015년 전 세계는 파리기후협정에서 산업화시대 평균에 비례해 지구 표면의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협약했다. 이후 위기는 사그라들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영국 기상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 전망했다. 그런데 2024년 기온은 1.34°~1.58℃가량 높아질 것이라고 한다. 일시적이겠으나 처음으로 1.5℃가 넘는 예측이 나온 것이다. 다수의 과학자가 짚은 2030년보다 훨씬 앞당겨진 결과다. 

하지만 이런 숫자만으로는 기후위기의 실체를 오롯이 느끼기가 어렵다. 게다가 자주 접하면 무뎌지기 쉬운데 기후위기는 이제 일상의 뉴스가 됐다.  

기후위기는 ‘알아야’ 보인다. 벌어졌고 벌어질 일에 대한 ‘마음’을 알아야 한다. 소식들을 계속 마주하다 보면 여러 마음과 만날 수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이니만큼 기후위기를 향한 마음가짐도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중심에는 희망 그리고 연결이 깃들어있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환경 문제 중 하나가 아닌 인간의 행동으로 불거진 거대한 복합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원불교에서 ‘사은, 사요’를 알고 마음을 세웠다. 일상에서 ‘내가 뭐라고. 이 세상은 이미 망했어’라는 어두운 마음이 일어날 때는 원불교 교법에 있는 ‘이소성대, 자력양성, 은혜’와 같은 가르침이 희망을 붙잡아 준다. 기후위기는 코앞에 닥친 재난이지만 어쩌면 동시에 ‘혼자보다 함께’를 깨닫게 하는 기회다. 크게 헤아리되 나 자신에서부터 소모임, 마을으로까지 행동한다면, 각각의 마음과 구체적인 활동이 서로 이어진다면, 또 그 연결이 3.5%의 법칙(인구의 3.5%가 평화 시위를 지속하면 정권은 버티지 못한다는 법칙)을 이뤄낸다면, 기후위기는 아직 해볼 만한 ‘과제’다. 

/원불교환경연대

[2024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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