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수 교무
장진수 교무

[원불교신문=장진수 교무] 불법연구회 제1대 제1회 원기1~12년(1916~1927)까지의 창립과정은 <불법연구회창건사>에 자상히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는 후일(1937~1938)의 기록이다. 당대 기록인 <사업보고서>도 시창13년도(1928년 4월~1929년 3월)부터 제출됐으며(시창12년도 사업보고서는 결산서만 수록), 첫 정기간행물인 <월말통신>도 제1회 기념총회 이후인 원기13년(1928) 음력 5월 31일에 발간됐다. 그러므로 제1대 제1회의 역사 중 불법연구회 창립(1924)부터 제1회 기념총회(1928년 3월)까지의 당대 자료는 매우 귀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립총회록’(1924년 4월 29일)과 제1회(1924)부터 제9회(1932)까지의 ‘평의원회록’, 그리고 ‘불법연구회 제1회 12년간 제 초(初)회 정기총회 회의록’(1928년 3월 26일)부터 원기22년(1937)까지의 ‘정기총회 회록’ 등은 불법연구회의 공의(公議) 과정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이상의 회록은 <원불교교고총간> 제6권 각항자료편에 수록).

‘창립총회록’을 살펴보면, “대정(大正, 1924) 13년 4월 29일 상오(上午) 10시에 전북 익산군 익산면 보광사(普光寺)에서 본회 창립총회를 개(開)할 새”라 하여 일시와 장소가 명시돼 있다. 보광사는 1920년 당시 이리 읍내에 설립된 최초의 사찰로, 2019년 아파트 부지에 편입돼 현재는 철거됐다. 

창립총회는 임시의장 송상면(萬京, 만경)의 개회 선언과 출석원 점검(총 39인 참석), 본회 창립목적 개요의 설명 후 임원선거가 이어졌다. 이때 “이형천(東安, 동안) 씨 동의(動議, 안건제안)로 … 지명선거를 행한 바 오재겸(創建, 창건) 씨 특청으로 만장일치 찬동하여 총재(總裁)는 박중빈(朴重彬) 선생으로 하여 본회 지도의 임(任)을 당(當)케 하고, 회장은 서상인(中安, 중안)씨로, 평의원은 서상진(東風, 동풍), 박금석(元石, 원석), 김성구(幾千, 기천), 문정현(正奎, 정규), 송상면, 오재겸, 이형천, 전세권(飮光, 음광) 제씨가 당선”됐다. 불법연구회는 공의에 의해 소태산 대종사를 총재로 추대해 공식적인 지도체제를 갖춘 것이다.

이후 <규약>의 원초안(元草案)을 축조(逐條, 한 조목씩 순서대로 검토) 통과했다. 본회의 유지 방법으로 각 회원의 연회비(1원)와 월 의연금(20전), 그리고 작농 수익 및 의연금 등으로 충용키로 했다. 이어서 송상면의 안건으로 회관 건축을 위한 의연금 모집을 송상면과 문정현이 담당키로 했다. 오재겸이 제안한 영광의 ‘기성조합실’에 출장소를 설치하자는 안건이 가결돼 김기천이 출장소의 일체 사무를 주재하기로 했다. 

이상 임원선거, 규약제정, 유지 방법, 회관 건축, 영광출장소 설치 등이 불법연구회 창립 총회 안건으로 다뤄졌다. 이후 김기천의 ‘재가선법 출가선법, 솔성요론’ 설명과 시대일보 이리지국장 정한조의 축사, 그리고 서상인(중안) 회장의 답사와 폐회 선언(오후 3시)이 이어졌다. 이로써 불법연구회가 공식 출범했다.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장

[2024년 2월 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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