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한 어부가 넓은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저 멀리서 배 한 척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알아서 피해가겠지 하며 어부는 고기 잡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순간 쾅~ 하고 양쪽 배가 충돌해 어부는 휘청거리며 넘어졌고, 배도 일부 파손되었다. 잔뜩 화가 치밀어 오른 어부는 씩씩거리며 상대방 어부를 향해 싸울 태세를 갖췄다. 대체 눈을 어디다 두고 다니느냐고 삿대질 하며 따지려고 보니, 어라, 그 배는 사공이 없는 텅 빈 배였다. 

빈 배라는 사실을 알고 나니 싸우려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부는 허탈한 웃음을 한번 짓고는 돌아와 배를 수리했다. 불필요한 감정 낭비는 순간에 끝나고 곧 평상심을 되찾았다. 만약 그 배에 사공이 타고 있었다면 상황은 완전 달랐을 것이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서로 상대방 잘못만 들춰 언성을 높이다가 집안싸움으로까지 번졌을지 모른다. 억울해 잠 못 이루며 가슴앓이 하다 생병이 나서, 별것 아닌 일로 만신창이가 될 수도 있다. 

잘 알려진 장자의 ‘빈 배’이야기를 좀 각색해 봤다.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에 대응할 때 ‘빈 배’를 각성하면 삶이 가볍고 수월해진다. 삶은 필시 수많은 배가 서로 접촉하며 운영되지만, 매 순간 배 안에 사공이 없음을 비춰 살면 어떤 큰 경계가 와도 아무 문제 없이 자유롭다. 
 

나 하나 공(空)하면 
일체가 공. 
내 집 없으매 
천하가 내 집.

일체는 텅 비어 주인이 없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대상도 원래 다 텅텅 비어있다. 일체가 공함을 비추어 보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난다.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하면 도일체고액(度一切苦厄)이 된다. 상대방이나 벌어진 상황 자체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이 마음이 괴로움을 더 강력하고 더 오래 유지시키는 문제의 선수다. 아무도 없는 허공에 헛스윙을 날리며, 혼자 엎어지고 뒤집어지고 죽자 사자 싸우는 우스운 꼴을, 평생 열심히 반복하며 산다.


배에 사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배 자체도 원래 없다. 일체의 물질, 즉 색(色)은 지수화풍(地水火風) 네 가지의 결합이다. 지(地), 흙의 가장 작은 단위는 물질이 아닌 텅 빈 에너지다. 수(水) 역시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공이며, 화(火)는 불기운, 풍(風)도 바람기운일 뿐 실체가 아니다. 지도 수도 화도 풍도 그 본질이 텅 비어 있으니, 어떤 물질, 어떤 색도 다 텅 빈 상태다. 수상행식(受想行識)이라는 정신작용 역시 일어났다 사라지는 기운일 뿐, 아무 실체가 없다.
나라고 우기는, 오온(五蘊)인 색과 수상행식은 텅 빈 것이며, 일체가 또한 텅 비어있다. 진리가, 법신불이 없는 곳이 없다는 말은, 일체 만물이 텅 빈 상태라는 뜻이다. 텅 비어야 없는 곳이 없음이 성립된다. 우주가 텅 빈 자리에 가득한, 공적하고 영지함이 바로 성품인 나다. 이 우주 가득한 공적영지심이 법신불이며, 나이며, 또한 너고 일체의 것이다. 
원래 태초부터 일체 모든 것이 테두리도 없이 텅 빈 하나의 기운, 법신불로 충만하다. 나도 너도 경계도 다 비었으니, 누가 누굴, 무엇으로 괴롭힐 것이, 원래 다 없음을 반조하는 것이 최고의 수행이며,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날 유일한 길이다. 

나 하나가 공(空)하면 일체가 동시에 공하다. 내 집 없으매 천하가 내 집이 된다. 그 큰집 살림하며 큰집에 머무는 것, 법신불 자리에 머무는 시간 늘리기가 신앙이며 수행이다. 오온, 육근의 주인공이 아니라 우주의 주인공으로 살면, 일체가 나 아님이 없는지라, 괴롭힐 자도 괴롭힘을 받는 자도 없다. 그러니 이것이, 오온이, 육근이 나라고 억지 좀 그만 부리고, 항상 오온이 공함을 비추어(照見五蘊皆空) 일체고액을 벗어날(度一切苦厄) 일이다.

/변산원광선원

[2024년 2월 7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