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종경 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찾아와 제자 되기를 청했다. 이에 소태산은 “다음에 한두 번 더 와보고 함이 어떠냐”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기 마음이 굳건하니 바로 제자로 받아달라고 했다. 소태산은 그의 법명을 일지(日之)로 내렸다. 그러자 그는 대중들에게 “이제 우리는 동문제자”라면서 “나에게 좋은 환약이 있으니 의심하지 말고 사서 쓰라”고 선전했다. 하지만 아무도 이에 호응을 않자 그는 노기를 띠며 “어찌 동지의 정의가 이럴 수 있냐”며 하루 해가 지기 전에 떠났다.

이를 통해 볼 때, 일지가 불법연구회에 접근한 것은 공부를 목표로 한 게 아니었다. 또 노기를 띤 것은 자기 이득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달리 있었다. 그래서 쉽게 떠날 수도 있었다. 문제의 발단과 결말이 아주 단순했기에, 그의 행위는 오랫동안 교단에 교훈처럼 회자될 뿐이다. 

그러나 원불교 역사가 100여 년을 지나며 당시에 일지가 던져주고 간 교훈은 새로운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몸은 교단에 두고 있으나 그 목적이 다르거나, 자기 이득을 얻기 위해 교단을 수단으로 삼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원불교 교세는 아직 그들의 목적과 이득을 채우기에는 빈한해 만족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이차적으로 생기는 게 불만과 불평이다. 공부에 뜻이 없으니 20대 시절이 불만스럽고, 서원이 약하니 바람에 흔들리는 30대 시절에 불만이 계속되고, 공도 사업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 40대가 되어도 불평이며, 그럭저럭 살았지만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니 50대에도 불평은 계속되며, 심지어 60대가 되어도 불만과 불평은 습관이 돼 남 탓에만 의지한다. 참 곤란한 일이다. 이는 원불교의 가르침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혹 그 불만을 대신해 물질적 이득이라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라면 이 역시 경계할 일이다. 물론 지금 교단은 사회의 발달과 아울러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어느 정도 물욕을 채워줄 수 있는 은행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 이득을 좇아 자리를 옮기는 일이 빈번하다.(물론 아주 일부에서만.) 그러나 생각해보라. 나의 본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그럼 결국 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영생살이를 추구하는 지혜로운 자라면.

흔히 나이 사십을 불혹이라 하고, 오십을 지천명이라 한다. 곧 가지 말아야 할 길과, 가야 할 길을 안다는 것이다. 또 소태산은 나이가 사십이면 죽음 보따리를 챙길 때라 했다. 그러기에 지금의 신체 나이를 예전과 비교했을 때, 대체로 50대 중반이면 자기뿐만 아니라 주위와 교단을 살피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만과 불평을 약으로 삼는다면 스스로에게나 주위에나 참 걱정스러운 짐이 된다.

[2024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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