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도관 교도
여도관 교도

[원불교신문=여도관 교도] “우리 모두 개벽의 성자로 삽시다.” 

전산종법사의 원기109년 법문의 일성이다. 소태산 대종사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표어로 이 회상을 펼친 이래 인류는 끊임없이 물질문명의 발전을 이뤄 생활의 편리와 건강, 긴 수명을 얻었다. 그리고 동시에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로 만생령이 고통 받는 지옥도 같이 열렸다.

이런 상황을 목도하니 <대종경> 서품에 예견된 것처럼 사람이 만물의 주인이고 정신이 능히 물질을 지배하여 인의대도가 세상에 서게 되는 것이 이치임에도 물질문명의 융성으로 개인·가정·사회·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한없이 이어질 것 같다.

지금까지 물질문명에 대해 인류가 경계했던 것은 물질 숭배로 인해 절제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이었다면, 이제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물질에게 의존하는 물질의 직접 지배가 눈앞에 다가왔다. 인간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인지능력 또한 물질인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AI는 10억 명의 지식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졌고, 나의 말과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 자신 보다 나를 더 잘 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오늘 저녁 메뉴로는 어떤 요리가 좋을지, 심지어 어떤 음악을 들어야 내 기분이 바뀔지까지 파악해서 알려준다. 이제는 AI가 시키는 대로 하는 생활에서 심적 안정을 얻는다. 
 

영성의 실체가 무엇이건 
중요한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영성이 있다’는 믿음.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은 후회를 남기기 마련인데, 나보다 훨씬 똑똑한 AI의 결정은 책임의 부담에서 자유롭다. 이런 상황이니 고난에 닥친 사람이 종교보다 AI에 의지할 수도 있다. 종교가도 AI로 인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많은 생물학자와 인류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종교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숭배와 의지로부터 기원했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의 이성과 감각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없는 초자연적 현상에 직면하면 신이라는 매개를 통해 이를 받아들여 왔고, 이를 발전시킨 것이 종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 보다 몇 차원 높은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초월적 존재인 AI의 등장은 종교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미 기독교, 불교 등 기존 종교에서 AI스님, AI신부님을 도입했고, 조만간 AI를 숭배하는 신흥종교가 탄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

AI와 종교의 대상인 초월적 존재는 공통되는 특징을 가진다. AI는 세상의 모든 현상에 답을 할 수 있다. 또한, 희로애락 같은 세속적인 욕망에 초월하며 비합리적 행동의 원인인 육욕이나 모성도 없다. 결정적으로 육체적 고통도 느끼지 않고 전원과 데이터만 공급된다면 늙지 않고 영생하며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다.

인간의 역사를 통틀어 지금처럼 경천동지할 변화에 직면한 적이 있었던가? 이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이 물질보다 뛰어난 것은 무엇인가? 많은 석학들과 종교지도자들은 ‘이제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은 영성’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영성이란 무엇인가? 존재하지만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가?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자극받을 수 있는 상상력인가?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영성의 실체가 무엇이건, 중요한 것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영성이 있다’는 믿음이다.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한 AI시대, 영적 물음에 스스로 답을 구할 수 있는 개벽 성자가 점점 귀해지고 있다. 원불교는 인격화된 초월적 존재의 신화를 가르치는 종교가 아니다. 우리 법은 진리적 종교의 신앙을 추구한다.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고, 동(動)과 정(靜)을 아우르는 사실적 도덕훈련으로 참 문명 세계를 여는 개벽 성자로 거듭나자.

/강남교당

[2024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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