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공부를 했으면 벌써 박사가 됐겠어요.”

화장실 두 번 빼고는 10시간을 꼬박 앉아있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에 컴퓨터 앞으로 출근했는데, 아이들이 일어났는데도 일하고 있었다. 1월과 2월, 두 번으로 나눠 실었던 특별기획 ‘1924, 그해 소태산’은 그런 여러 번의 밤들로 탄생했다. 

많은 자료를 뒤지고 <원불교교사>와 대조하면서, 우리는 100년 전을 그렸고, 소태산을 떠올렸으며, 이 지면을 읽을 독자들의 반응을 상상했다. 올해가 어떤 해이며, 여러 100주년은 어떤 의미인가. <원불교신문>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갈 100년의 은혜로, 우리는 ‘박사가 될 정성’을 다해 신문을 만들었다. 

기자에게 좋은 기사를 쓰는 것 이상의 보상이 있을까. 그런데, 피드백은 대단했다. 그 기사로 법회를 보거나, 지면을 벽에 붙이고, 한 글자 한 글자 공부해 쪽지 시험도 봤댔다. 잇단  요청에, 인쇄비와 배송비를 추가로 들여 방방곡곡 신문도 보냈다. 그러면서 들었던 말. “<원불교신문> 많이 좋아졌네요.”, “<원불교신문> 보는 재미로 삽니다!”

사실, 우리 신문이 좋아진 건 ‘쫌’ 됐다. 세상을 어떻게 읽어내고 우리 것으로 가져와야 하는지, 진정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이 작은 아이디어가 어떻게 공감을 이끌어낼지, 우리들은 늘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렇게 한 해 워밍업, 또 한 해 빌드업을 거친 올해 신문은, 지난해 가을부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던) 10번의 회의까지 해냈다. 그 가운데 ‘1924, 그해 소태산’ 기획도 나온 것이니, <원불교신문>에는 아직도 열두개가 넘는 아이디어가 남아있다! 짜잔! 

변화라는 게 처음엔 미미해도 어느 순간 변곡점에서는 훅 올라온다. 한 외부 컨설팅업체 대표는 “<원불교신문>은 우리 사회를 읽어내는 탁월한 시선으로, 원불교에 활기차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입혀준다”고 했고, 한 원로교도는 “전에는 종교 따로 세상 따로였는데, 이제 <원불교신문>을 통해 세상을 본다”고 했다. 우리의 그 고민과 노력들이, 이 피드백 하나하나에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지금 <원불교신문>의 약진은 우리의 ‘잘 만들 결심’을 지면에 풀어낸 결과다. ‘결심은 특이하게, 처신은 평범하게’ 하고자 매주 조금 더 뛰고 조금 더 쓴다. 우리는 소식을 전하고 역사를 쌓는 일을 넘어, 원불교를 세상에 내보이는 위대한 일을 하고 있다. 또한 가장 바라건대, <원불교신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교화가 되는 그 마법 같은 순간을 꿈꾼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더 잘 만들 결심’을 이룰 테니, 독자 여러분들도 ‘더’ 봐주시고 ‘더’ 전해주시길 부탁한다.

참, 지금 우리의 약진에는 또 다른 비결이 있어 살짝 전한다. 지금 신문사의 교도율(?)은 100%, 그것도 법회 빠지면 큰일인 줄 아는 사람들이다. 매일을 법회로 시작하고, 신심으로 서로를 북돋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니 ‘잘 만들 결심’이 어찌 허공으로 날아가겠는가. <원불교신문>에 담긴 ‘진심’은 다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다.

[2024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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