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신 부곡교당 교도회장
김대신 부곡교당 교도회장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어느 교당에 비가 샌다더라’, ‘그 교당이 낡아서 좀 위험하다더라’.

이런 소문을 유독 크게 듣고 달려가는 이. 더러는 참아내고, 아주 조금씩만 고치며 사는 교무님을 못내 안쓰러워하는 이. 비 새는 지붕, 삐걱대는 계단, 황소바람 들이치는 창문도 뚝딱 고쳐내는 이. 바로 김대신 부곡교당 교도회장이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며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의 수십 년짜리 실력은 유독 교당 고치는 데 빛난다.

“막상 가보면 그냥 간단히 손만 갈 일도 있습니다. 비용이 들어가야 하면 원가 정도는 받아요. 그러니 신문에 나갈 정도가 못 됩니다.”

손사래를 치지만 사실은 달랐다. 비용이 많이 나오면 많이 나와서 다 못 받고, 얼마 안 되면 얼마 안 되니 안 받았던 그다. 

“아무리 바빠도 교당들을 찾아가는 이유가 있어요. 다음에는 자력으로 하실 수 있도록 알려드리려는 거죠.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미리 방지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많거든요.”

교당의 훗날까지도 앞서 염려하고 대비하는 김 교도회장. 그러니 그를 아는 사람은 그의 법호 ‘천산’을 ‘하늘에서 내린 신심’으로 기억한다. 그 하늘 같은 신심을 되짚자면, 가장 위에 어머니가 있다.

 

중앙청운회장 역임하며 청운회 전성기 이끈 주역 
건설현장에 필요한 인내심과 적극성, 교당에서 배워
이익처럼 어려움도 저축하면 이롭게 돌아오는 이치

아들 머리맡에서 목탁 치던 어머니
“어머니가 쌀을 사러 갔는데 쌀집 주인이 너무 친절했대요. 물어보니 원불교를 다닌다고 해서 어머니도 그 길로 대연교당에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얼마나 열심이셨냐면, 매일 새벽 1시간을 걸어 버스를 타고 새벽기도에 참석하셨어요. 교당에 안 가실 때는 새벽 4시부터 목탁을 쳤는데, 꼭 제 머리맡에서 치셨어요.”

목탁 소리가 싫어서 이불 쓰고 돌아누울 때가 많았지만, 그의 마음은 어머니의 신성에 점차 누그러졌다. 다니지 않던 교당에서 결혼식을 하라고 했을 때도 군말 없이 따랐고, 아내(이성원 교도)와 어머니가 교당에 간다면 얼른 데려다 줬다. 그러던 어느 날, 30대 중반쯤의 그의 마음에 교무님의 한 말씀이 훅 들어온다.

“부모님이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부모님을 선택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저는 부모님 원망, 내 형편 원망을 많이 하고 살았어요. 어려운 형편 때문에 제가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교무님의 말씀에 마음이 스르르 녹더라고요.”

<원불교교전>을 뒤적이다 만난 한 문장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그때 그는 ‘원불교가 이런 것도 가르치나 보다’며 다녀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게다가, 교무님은 그를 이렇게 반겼다.

“아이고 잘됐네요, 짐 좀 내려야 하는데 좀 도와주세요.”, “마침 교당에 손 볼 데 가 있는데 잠깐 시간 되십니까?”

이상하게도 교당에는 매주 그가 필요한 일이 생겼고, 그렇게 그는 교당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어갔다. 이내 39세의 나이로 교도부회장을 맡아 20년을 넘겼고, 교도회장으로는 올해 14년째다. 

‘너한테 인내심 하나는 배울 만하다’
그의 이름 세 글자는 원불교 청운회의 역사에도 아로새겨있다. 부산울산교구 청운회와 중앙청운회를 이끌며 10년 기도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했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구인선진의 혼을 체 받는 ‘영산법인기도’에 보람이 크다. 4축2재 중 ‘더 우리 것’인 법인절과 대각개교절을 더 살려내야 한다는 믿음이다. 

“이제는 그동안 교당 다니면서 뭐가 달라졌나 돌아보는데, 얼마 전 수십 년된 친구가 그러대요. ‘너한테 다른 건 없는데 인내심 하나는 배울 만하다’고요. 좋은 점은 다 원불교 덕분에 갖춘 거예요.”

어디든 인내가 중요하다지만, 특히 더욱 필요한 곳이 건설 현장이다. 노동자의 안전이 중요하다 보니, 그 역시 오랫동안 입이 거칠었고, 명령하기에 바빴다. 하지만 점차 그들을 존중하며 제 몫을 하도록 이끌게 됐다. 이 과정에 들여야 하는 엄청난 인내심을, 그는 모두 원불교에서 배웠다.

“공사는 다 했는데 대금을 못 받는 일이 많아요. 상대도 잘해보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못 줄 때는, 저도 속상하고 말아야죠. 그런데, 있으면서도 일부러 안 줄 때는 마음이 정말 힘듭니다. 그럴 땐 <대종경> 인과품을 보고 또 봐요.”

부곡교당 교도들과 원디대에서 공부 
부도도 났었고, IMF나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도 있었다. 그때마다 잘 넘겨왔지만 지난해는 정말 경기가 확 얼어붙어 또 한 번 바닥을 쳐야 했다. 허나 그는 늘 “올해부터는 괜찮겠지”라고 기대하며, 비관보다는 낙관, 절망보다는 희망을 품는다. 

“기업이 잘되면 부를 축적하는 것처럼, 부도를 많이 맞으면 어려움이 저축됩니다. 그게 힘이 돼 다른 위기를 수월히 넘기거나, 아니면 내게 이롭게 돌아오리라 믿어요.”

교전에서 읽고 교당에서 배운 대로 삶에 적용하는 그의 산 공부. 몇 년 전부터는 교도회장을 잘 물려주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원불교학과에 입학해 올해로 3학년, 선후배로 함께 공부하는 부곡교당 교도만 11명이다. 공부하는 분위기를 만들고자 독려했던 결실이다. 최근에는 WBS원음방송 후원회 부회장을 맡아 원불교를 알리는 재미까지 쏠쏠하다는 김 교도회장. 늘 어려운 교당 소식에 귀를 기울이던 그가, 이제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복 짓는 보람을 쌓고 있다.

[2024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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