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 교도
김성식 교도

[원불교신문=김성식 교도] 역시 청년마음훈련이었다. 훈련에서 도반들과 함께 하니 일찍 일어나는 것도 쉽고, 무분별한 핸드폰 사용, 나태히 누워있는 것 등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었다. 또 다른 한가지, 너무나 다른 내 마음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별다른 준비없이 왔지만 막상 시작하니 진심으로 ‘순간순간에 집중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엔 잘되다가도 곧 다른 곳에 생각이 가있기도 했지만 가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돌아오려고 노력했다. 아침에 좌선하기 전 발목돌리기도 ‘진심’으로 하고, 선요가 모든 동작을 ‘진심’으로 하며, 단전에 중심 두는 것도 유념했다. 마음공부도, 강의도, 볼일을 보고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득 나 자신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사에 진심으로 살았던 적이 있는가? 

나는 항상 요령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막 마음놓고 살아도 되는 가정환경은 아니라서 어릴 때부터 눈치가 꽤 빨라야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감정들을 감당해 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저절로 차단시킨 것 같다. 그런 식으로 회피하고 싶으면 그 상황에 진심으로 임하지 않고 겉으로 ‘그런 척’만하며 살아왔다.
 

실수하고 무너져도
좌절할 필요 없다.
이 공부는 평생
주의해 나가야 하는 공부다.

고등학생 때 연극을 하고 상을 받기도 했지만, 진심을 다하지 않았기에 기쁘지 않았다. 애매하게 진심없는 삶은 지속됐다. 어릴 때 꿈은 ‘진하게 사는 것’이였을 정도로 인생이 겉핥기라고 느꼈다.

힘들 때 진심을 다해 정공법으로 타파해 본 적이 있는가? 정말 없었다. 있어도 정말 잠깐이고. 중요한 순간들에 항상 도피하거나 정신이 빠져있었다. 그렇게 정도(正道)를 안 밟고 요령으로 하려니 모든 일이 잘될리 없었다. 

근데 이 훈련에서는 진심으로 살았다. 원불교에 입교한지 4년, 진심으로 해보니 그동안 겉으로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빨리, 쉽게 되기만을 원했지 그 속을 헤쳐가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살며, 그 고통들을 인내해서 해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근데 솔직히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 일상에 돌아가서 강한 유혹들을 뿌리치고 잘 살 수 있을까?

십 년 넘게 공부해온 교무님도 마음을 놓으면 쇼츠보며 한 시간을 흘려보낸다고 한다. 중생과 부처의 차이는 마음 챙기고 못 챙기고 그 한 장 차이라고 했다. 부처도 마음 못 챙기면 중생되고, 중생이 마음챙기면 그땐 부처가 된다.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고 끝이 아니고, 중생의 마음을 낸다고 해서 실패가 아니다. 실수하고 무너진다고 해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 이 공부는 평생 주의해 나가야 하는 공부다.
이제 나는 진심으로 할 거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할 것이다. 진심으로 임한 후의 실패가 기대되고, 실패 후에 결국 해낼 성공들도 기대된다. 

/강남교당

[2024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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