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수 교무
장진수 교무

[원불교신문=장진수 교무] 불법연구회 2대 회장 조송광은 창립총회록 말미에 “불법연구회 창립총회 이후 5개년 동안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기총회 및 임시총회를 개최치 못하고 평의회로 이를 대(代)하였사오니 계속 결의요항은 평의회회록에 견(見)함. 시창13년 7월 25일”이라고 직접 적었다. <불법연구회규약>(1927, 이하 <규약>)을 보면 회의는 ‘정기총회, 임시총회, 평의원회, 월예회’로 규정되어 있는데, 실제로 시창(원기)13년까지는 평의원회에서 중요한 결의가 이뤄졌다.

제1회 평의원회 회록(1924년 9월 10일)에 따르면 첫 회의는 익산 송학리 박원석의 집에서 개최됐다. 첫 안건인 회관 건축 문제는 ‘의연금모집위원’ 송만경이 의연금 모집의 전말을 보고한 후, 이미 수합된 의연금으로 공사를 착수하고 부족한 의연금은 계속 수합하기로 결의했다. 회관 위치는 박원석의 알선으로 구입한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3천여 평)에 두기로 결정했다. 이어진 임원선거에서는 서무부장 오창건, 서무부서기 송도성, 연구부장 송규가 <규약>에 명시된 7부 중 첫 임원들로 선임됐다. 

제2회 평의원회 회록(1925년 4월 1일)에 따르면 두 번째 회의는 북일면 신룡리 344-2번지의 본회 사무소에서 개최됐다. 먼저 회장의 전회록 낭독 및 1년간 경과보고가 있었고, 서무부장이 회계 및 회관 건축에 관한 수입 및 비용을 상세히 설명했다. 안건은 전주토지매매 건 등이었다. 전주토지는 창립발기인 7인 중 유일한 여성 회원이었던 이청춘이 의연한 토지로, 출가 농업원의 작농 편의를 위해 이전 땅을 팔고 부근의 다른 땅을 구매(移買, 이매)하자고 만장일치 가결했다.

이어서 오창건의 사표로 이동안을 서무부장으로 선임했다. 회관 증축의 문제는 이동안이 “본회는 타회(他會)와 달라서 회원이 직접 회관에 거주를 하니 현 옥사로는 협착”하며 “선기(禪期) 때 정간(正間, 건물 중앙의 공간)은 선실(禪室)로 사용하면 사무소 및 식당이 곤란하니 부득이 증축 공사를 피할 수 없음”을 주장한 안건이다. 다만 비용예산이 부족해 의견이 모이지 않았으나 서중안 회장이 비용 부담을 언명(言明)해 결국 증축을 결의했다.

이어서 송규의 안건으로 “본회는 수양연구가 주요목적인 바 선기는 급박하고 입선지원자가 유(有)할 장소가 미비하니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하였는데, 전음광의 양허(讓許, 양보하고 허락함)로 전음광 가옥 일부에 임시 부인선원(夫人禪院)을 두기로 결정했다. 오창건이 제안한 농무인 양성 문제는 북일면 만석리에 논이 많고 수리조합의 덕을 보는 구역이므로 3천여 평을 1년간 소작하기로 결정하고 김광선 주관으로 농업원 3인이 나눠 짓기로 했다. 

이상 창립 첫해 두 차례 평의원회에서는, “본회의 목적인 수양연구의 공부를 실시하기 위해” 회관을 건축(증축)하는 일과 선원의 운영을 위해 선실을 마련하는 일, 그리고 출가인의 생활방도를 마련하는 일 등이 주된 관심사였음을 알 수 있다.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장

[2024년 2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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