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층이 더 열광하는 전통문화 ‘힙트래디션’과 뮷즈
사색하는 박물관, 명상하는 미술관으로 관람객 모여
전시 공간의 디자인, 수유실·웨건 등 가족 배려 주목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전시실 그득그득 쌓인 유물을 공부하듯 관람한 후, 공짜 브로셔 한 장 받아 들고나오는 시대는 지났다. 미술관에 갖춰진 명상관에서 명상을 하고, 나올 때는 그곳만의 이야기가 담긴 굿즈를 사 오는 게 요즘 K-전시의 국룰.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팝업스토어를 ‘가볼 만하게’ 만든 K-컬처 전시의 힘을 관람해보자.

뮷즈 구매자의 60%가 2030
20대들의 잇템이 반가사유상, 금동대향로가 되는 시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김홍도 풍속화 속의 취한 선비가 새겨진 술잔은 없어서 못 파는 뮷즈(뮤지엄+굿즈)가 됐다.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밝힌 지난해 뮷즈 매출액은 역대 최고인 149억원. 불과 1년 전과 비교해도 27%나 훌쩍 성장했다. 
 

백제금동대향로
백제금동대향로

실제 백제금동대향로의 절반 크기인 3D 프린팅 작품 가격은 9만 9천원. 2020년 12월 출시된 후 3만 개 넘게 팔렸는데, 최근 10년간 나온 뮷즈 중 제일 많이 팔렸다. 대부분은 고가인 뮷즈를 누가 살까. 지난해 구매자들 중 무려 48.7%가 30대, 12.7%가 20대였다. 전체 구매자의 60%가 2030인 셈이다. 이들은 뮷즈 구매 이유를 ‘힙한 디자인’으로 꼽는데, 이는 전통을 고리타분한 옛것이 아닌 힙한 문화로 받아들인다는 의미다. 전통이 젊은 층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이 같은 현상을 ‘힙(Hip, 멋짐)’과 ‘트래디션(Tradition, 전통)’의 합성어 힙트래디션으로 부르기도 한다.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나 크고 높아졌다는 반증이다.

사유의 방, 참여형 전시의 등장
뮷즈의 호황과 함께 K-전시의 양대 산맥으로 ‘사유’를 꼽는다. 뮷즈와 사유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란과 비등할 정도로 현재의 전시 트렌드를 이끌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1년 11월 국보 반가사유상 딱 두 점으로 ‘사유의 방’을 열었을 때, 의아해하던 세상은 이내 열광했다. 이 두 국보(제78호, 제83호)는 원래 보존 및 휴식을 위해 3개월 단위로 한점씩만 전시됐었는데, 두 점을 한 공간에 전시하는 것, 최초로 반가사유상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집중력을 높인다는 계피향을 깔아 관람객의 사유를 밀어주는 박물관의 진심도 화제였다. 반가사유상을 오롯이 느끼는 입체적인 시간이요, 보는 것을 넘어 무언가 ‘할 거리’를 주는 전시의 등장이었다. 

‘멍때리기 핫플’로 입소문을 탄 사유의 방은, 복잡한 세상 가운데 정적과 여유와 비움을 찾는 니즈를 정확히 만족시켰다. 개관 이틀 만에 1만명이 다녀가는 기염을 토한 ‘사유의 방’은 세계의 눈과 귀를 빨아들였고, 2023년 한 해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1천만명 시대를 열었다.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공부하고 배워가는 곳이 아니라 멈추고 비우고 사색하는 곳. 박물관의 이런 변화는 ‘전시 공간도 디자인한다’는 트렌드로 설명된다. 그저 잘 보여주는 것만이 아닌, 대상과 공간이 한 디자인 안에서 표현되는 흐름인 것이다. 수학여행 일번지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신라의 미소 얼굴무늬수막새를 위한 공간이 있다. 지름 11.5㎝로 손바닥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의 수막새를 텅 빈 벽에서 만날 때, 그 불완전한 아름다움과 염화미소가 더 크게 다가온다는 평이다. 이 밖에 둥근 방에 오직 한 점만을 전시해 180도 볼 수 있는 금관이나 백률사 약사여래도, ‘이 작품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오롯이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담뿍 묻어난다. 

전시 공간의 디자인에 대해 박경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관은 “이전 전시의 모습은 깔끔한 분위기에서 유물이 전시되는 평면적 구조의 전시였다면, 최근에는 전시 대상의 의미와 특징을 잘 보여줄 수 있는 공간 연출이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시할 때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뮤지엄SAN
뮤지엄SAN

아이들도 함께 갈 수 있는 미술관
‘사유의 방’으로부터 시작돼 곳곳의 박물관에 스며든 사색과 명상은 미술관까지 품어냈다. 강원도 원주의 해발 270m에 위치한 ‘뮤지엄SAN’은 2023년 반년간의 안도 타다오의 전시에 관람객 30만 명을 모으며 K-전시 최정상으로 우뚝 섰다. 전실 격인 야외정원의 극대화, 건축물 전체를 오르내리는 긴 동선, 중정의 쓰임 등이 두렷한 특징이다. 또한 우산과 아이를 싣고 다닐 수 있는 웨건을 비롯, 잘 갖춰진 수유실과 어린이도 할 수 있는 판화 체험 등으로, ‘아이들이 함께 갈 수 있는 미술관’으로 입소문이 나며 가족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뮤지엄SAN의 시그니처인 땅속 느낌의 명상은 인기의 일등 공신이다. 아예 별도로 만들어진 명상관에서 매일 10회, 40분간의 명상이 진행되는데, 기본권(2만 2천원)보다 훨씬 비싼 명상권 가격(3만 8천원)임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안도 타다오, 백남준, 김환기 등의 이름값보다, 산속이라는 조건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명상’을 내세운 점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그 밖에도 국립제주박물관, 경기도박물관, 전북도립미술관 등 곳곳이 명상을 진행하는 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아예 지난해 예술 키워드를 ‘명상’으로 잡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이제 박물관은 친절해지고, 미술관은 적극적인 K-전시의 시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K-컬처의 성장을 바탕으로, ‘보여주는 전시’에서 ‘경험하는 전시’로 흐름이 옮겨가고 있다. 전시를 찾아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많은 돈을 쓰는 이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생생히 남겨진 기록과 유물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우리의 자산이 종교를 넘어 역사와 문화와 지역사회 안에서 어떤 의미일까. 우리 원불교는 현재 역사상 가장 흥미로운 100년을 여실히 품고 있다. K-전시와 함께, 한 발짝 더 나아가보자.
 

[2024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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