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서 교무
김인서 교무

 Q.  마트에 갔는데 두부 한 모와 두 모의 가격이 비슷해서 망설이다가 결국 큰 것을 샀습니다. 이렇듯 사소한 경계가 자주 제 손을 붙듭니다. 사실 남편과 둘이서만 먹으니 한 모만 사도 적당한데 자꾸 제가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남기게 되고 버리게 된 경우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가끔씩 올라오는 이 욕심, 어떻게 하면 뚝 떼어낼 수 있을까요?
 

 A.  살림을 해본 적 있다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입니다. 저도 시장에서 장을 볼 때 정토님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언젠가 두 개를 묶어 호박을 샀다가 결국 한 개를 버렸습니다. 그날은 유독 미안한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신의 아들에게 남긴 <니코마코스 윤리학>이라는 유명 저서가 있습니다. 그 책은 행복한 삶을 위한 윤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끊임없이 선택의 상태에 놓입니다. 최선의 선택을 위해 그는 ‘중용적 삶’을 이야기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토님의 고민을 듣는다면 “방탕은 과한 것이고, 인색한 것은 부족한 것이다” 그리고 “방탕과 인색의 극단적 행동보다는 중용적인 행동을 강조며 검소하게 살라”고 말 할 듯합니다.

현대사회는 우리의 검소함을 빼앗아 가려는 물질 세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다행인 것은 방탕한 사람과 인색한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검소한 사람이 되기 쉬운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방탕한 사람이 검소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인색한 사람은 평생 자신의 이득만 챙기며 살다가 생을 마감하지만, 방탕한 사람은 재산은 탕진해 타인을 위한 삶도 어느 정도 살았고, 탕진 후의 삶에서 검소함과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정토님은 마트에서 구입한 제품들을 버리고 후회하는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하는 ‘중용’이며 ‘관조적인 삶’입니다. 관조적인 삶이 향락, 부, 명예를 추구하는 삶보다 더 행복으로 이끈다고 보았습니다. 우스갯소리로 마트에서 두부 두 모를 사는 정토님과 시장에서 사온 야채를 썩혀서 버린 제가 자린고비처럼 인색한 사람들보다 더 중용으로 검소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물질문명이 발달하는 만큼 정신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원불교를 열었습니다. 욕심을 내 많은 소비를 하는 것보다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이룬다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창립정신에 대조하며 자제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마음공부에 도움이 되겠습니다. 

/반송교당

[2024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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