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황서진 교도] 바야흐로 ‘도파민 중독의 시대’에 살고 있다. ‘도파민(Dopamine)’은 인간의 쾌감이나 즐거움과 관련된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로, 목표를 달성했을 때 혹은 자극적인 상황에 노출됐을 때 주로 분비된다고 한다. 

클릭 한 번이면 먹고 싶은 음식이 집 앞까지 배달되고, 30초 남짓의 짧은 동영상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요즘이다. 똑같은 일상을 따분해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찾는 행위를 두고, 게임에서 물건을 수집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 ‘파밍(Farming)’을 합친 ‘도파밍’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120분짜리 영화도 5분 남짓한 요약본으로 대체해 습득하는 세상이니, 도파민 중독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게 힘들고 숏폼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면, 당신도 도파민의 늪에 빠진 것일 수 있다.

오늘 추천할 애니메이션 <이세계 식당>은 이렇듯 인위적이고 자극적인 콘텐츠의 범람에서 벗어나고픈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작품이다. 판타지 노벨(소설)을 원작으로 시작한 만화에는 흡혈귀 부부, 식인 괴물, 불을 뿜는 드래곤과 같은 괴물들이 등장한다.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대며 혈투를 벌일 것 같은 괴물들이지만, 이들이 벌이는 싸움이라고는 그저 내가 주문한 음식이 더 맛있다며 아웅다웅하는 말싸움이 전부다. 어디 그뿐인가. 식당에 신메뉴가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우르르 몰려와 오픈런을 하는 열정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때때로 우울감과 쓸쓸함이 덮쳐올 때
누군가가 만들어 준 따스한 저녁 한 끼를
먹고 싶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괴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식당의 이름은 양식당 네코야. 고양이가 그려진 이 식당의 출입문은 손님이 올 때마다 ‘딸랑’ 하는 방울 소리를 내며 열린다. 직장가에 인접한 빌딩에 오픈한 이래 50년 넘도록 수많은 회사원의 배고픔을 달래 온 곳으로, 양식당인데도 굉장히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이 식당이 특별한 이유는 정기 휴일인 매주 토요일에 있다. 토요일마다 네코야에는 ‘어떤 세계’라 불리는 세계로부터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돈까스 덮밥, 비프  스튜, 새우튀김, 오믈렛, 미트소스 스파게티, 초콜릿 파르페 등 평일의 직장가 손님들에게는 평범한 음식이 토요일의 손님들 앞에서는 처음 먹어보는 경이로운 메뉴로 탈바꿈한다. 흡혈귀, 식인 괴물, 도마뱀 인간, 드래곤까지 ‘어떤 세계’를 주름잡는 괴물들은 네코야의 음식 앞에서 한없이 순한 양이 되고 만다. 

작가는 이 작품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검도 마법도 존재합니다만, 별 활약은 하지 않습니다. 점주는 보통 아저씨입니다. 요리 말곤 하지 못합니다. 나오는 손님은 매회 바뀝니다. 다만, 가끔 단골이 되는 손님도 있습니다.’

작가의 말처럼 만화는 정말로 그저 이세계 손님들이 네코야의 음식을 소중하게 먹는 장면들을 보여준다. 흔하디 흔한 갈등 요소나 고자극적 에피소드는 없다. 다만, 음식이 너무나 맛깔나게 표현된 탓에 심각한 배고픔을 야기한다는 게 유일한 부작용이다. 만약 이 애니메이션을 볼 계획이라면 심야시간대는 피하기를 권한다. 사자머리를 한 야수의 먹방에 야식을 참지 못하게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만화를 보며 ‘정성이 깃든 음식이 주는 힘’에 관해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 매운 음식을 찾고, 기운이 나지 않을 때 달콤한 디저트를 떠올리듯 때때로 우울감과 쓸쓸함이 덮쳐올 때 누군가가 만들어 준 따스한 저녁 한 끼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쉽고 짧은 쾌락만을 좇다 보면 느끼게 되는 순간의 헛헛함 같은 것이랄까. 자극이 부족한 상황에서 오는 우울감일 수도 있겠다.

차고 넘치는 도파민 가득한 콘텐츠들의 홍수에 지쳤다면, 이 만화와 함께 네코야 식당에 방문해보는 건 어떨까. 별 활약 없는 이세계 종족들과 그저 요리만 할 뿐인 점주가 내어놓는 저자극 순한 맛 음식들을 눈으로 먹고 있노라면, 어느새 네코야의 단골이 되어버린 당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방송작가, 고창교당

[2024년 2월 28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