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여주 교도
박여주 교도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교무님이 저에게 숙제를 주셨으니 해야지요. 처음에는 누구를 입교시켜야 하나 걱정이었지만, 교무님 말씀을 믿고 용기를 냈어요.”

지난해 원불교 서울교구 개인부문 최다연원상을 수상한 박여주 교도. 그는 “법강항마위로 승급하려면 입교연원의 의무를 해야 한다”는‘교무님의 숙제’를 성실하게 해냈다. 그가 지난해 입교시킨 연원은 모두 10명. 자신을 돌봐주는 요양사와 아파트 노인정 회장 부부, 막내여동생 부부가 그의 진심을 알아줬다. 막내동서, 조카와 조카며느리, 만만치 않은 시월드 동갑내기 시누이와 시누이 딸도 그를 통해 원불교에 입교했다. 

한 사람 법연맺기도 불공의 길이 쉽지 않은데, 10명을 입교시킨 박 교도에게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것일까. 원불교인으로의 삶, 그 선한 영향력이 비결이라면 비결인 셈. 그렇다고 그의 삶이 순탄하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다.

“우리 아저씨(남편)하고 살 수도 안 살 수도 없었어요. 참 힘들었죠.” 형과 동업해 일하던 남편은 임금체불 등 형과의 불화로 술에 의지해 살았다. 두 딸을 키우며 생업을 책임져야 했던 박 교도는 쉴 틈 없이 일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하루도 거를 날 없이 술을 마시고 거칠어지는 남편 때문에 편안하게 잠을 잔 적 없던 나날이었다. 

친정어머니(정동인행 교도, 화명교당)가 반대했던 결혼을 했던 박 교도는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결국 상황을 알게 된 친정어머니는 남편에게 ‘이혼을 해주지 않으려면 원불교에 다니면서 법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남편이 술을 끊고 교당을 다녔던 그 일 년이 그에게는 그나마 휴식의 시간이었을까. 하지만 남편이 교당에 다닌 시간은 1년 남짓, 남편은 다시 술에 의지했고 박 교도의 고달픈 시간도 다시 시작됐다.

그러나, 교당에 갔던 날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는 법문은 박 교도를 완전히 달라지게 했다. “버티고 살면서 원망만 하고 살았어요. 아저씨도 원망하고 나 자신도 원망했지요. 이 법 아니었으면 어떻게 버텼을까요.” 원망심 가득했던 지난날을 참회하며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마음공부의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가정형편에 글을 익히지 못했던 박 교도는 교무의 지도를 받으며 한 줄 감사일기도 쓰기 시작했다. 이제는 또박또박한 글씨로 제법 많은 내용을 감사일기에 담아낸다. 이렇게 좁쌀 같은 영단이 모이고 모여 변화된 그를 주위에서 알아봤다. 박 교도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바라본 지인과 친인척이 흔쾌히 그의 말을 믿고 원불교에 입교한 것이다.

삶 속에서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있는 박 교도의 마지막 말이 가슴에 담긴다. “나를 새 사람 만들어준 이 법(원불교)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2024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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