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관사촌, 복합문화 공유공간으로 부활
실제 살았던 생활감, 다양한 콘셉트로 눈길 끌어
원불교 중앙총부 건설 100주년 맞아 ‘이야기’ 전해야

[원불교신문=이현천 기자] 원불교 익산성지 구내에서 순례객을 만나면 괜시리 반갑고, 뭐라도 전하고픈 게 우리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먼저 말을 걸긴 멋쩍고, 혹 모르는 질문이 올까 싶어 긴장된다. 그래도 ‘인사를 하면 말 한번 붙여주길’ 바라는 마음이 든다. 

새봄이 온다. 봄과 함께 사람도 온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푸르른 청춘들이 길 건너를 찾아올 것이고, 따뜻한 봄볕에 마실 나온 어르신들도 오순도순 성지를 찾을 것이다.
이곳으로 발길 향한 이에게 우리는 무엇을 더 줄 수 있을까. 이 오래된 공간이 가정·사회·국가·세계에 어떤 에너지를 전할 수 있을까. 한 생각을 따라 ‘오래된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핫플을 찾아가 답을 구해봤다.
 

문 열린 철옹성, 시민들에게로
대전광역시 ‘테미오래’(전 충청남도 관사촌)는 지역에서 대표적인 ‘오래된, 새로운 것’이다. 거슬러 보면 1932년 대전에 충청남도청과 공무원 관사가 지어진 게 테미오래의 시작이다. 

도지사 관사, 1·2·5·6호 관사가 먼저 지어졌고, 이후 1970년대에 3·7·8·9·10호 관사가 하나둘 생겨났다. 도청과 700m 정도로 가깝고, 뒤에 수도산과 앞에 대전천을 둔 배산임수 명당이다. 특히 일본식 구조의 도지사 관사 베란다에서 보는 수도산 벚꽃은 특별한 정취를 전한다.

관사들은 실제로 공무원들이 지내다가 2012년 도청 이전으로 비워졌다. 이후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연마해 오던 중 시민공모를 통해 ‘테미오래’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곳의 옛 지명인 ‘테미’와, 대문을 맞댄 집이 몇 채 있는 마을을 뜻하는 ‘오래’라는 말이 만난 결과다. 그렇게 테미오래는 2019년 굳게 닫힌 철문을 열고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현재는 관사에 담긴 건축문화와 함께 특별전시, 문화예술 체험 등을 진행하는 ‘복합문화 공유공간’으로 탈바꿈해 사람들을 만난다.
 

다양한 건축양식 비벼진 ‘도지사 관사’
테미오래의 가장 큰 집인 도지사 관사는 2012년까지 실제로 도지사와 가족들이 지냈던 공간이다. 

높은 담장과 국기 게양대가 보이고, 대문 옆 초소를 보면 이곳이 단순한 주택지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해설사는 “제가 어릴 때는 양쪽 입구에 헌병들이 있어서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성역’이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다 공개돼 누구나 올 수 있고, 시민들이 편히 내왕할 수 있게 담벼락에 문을 새로 냈다”는 이야기로 기억 속 역사를 전했다.

오래된 단독주택에 들어서면 입구와 칸칸이 나눠진 공간과 복도 구성에 낯섦이 느껴진다. 해설사는 “유럽에서 건축을 배운 일본인들이 이 시기에 한국에서 건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페치카(벽난로)와 다다미, 우리의 온돌까지 모두 섞여 있다”고 설명했다. 정말로 어느 공간에는 유럽형 난방구조인 페치카와 라디에이터가 놓여있고, 한 복도를 지나면 다다미가 깔린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일본인들의 실제 전통식 방 구조를 갖춘 곳도 있었다. 벽을 파 귀한 물품과 그림 등을 걸어 놓는 도코노마(床の間)와 붙박이장인 오시이레(押入れ), 응접을 위한 비밀계단 등이 신선함을 전한다. 

이곳에는 도지사가 실제로 회의를 했던 공간과 업무를 보던 도지사 서재도 그대로 남아있다. 대전과 충남도청의 역사를 품은 물건들도 집안 곳곳 전시돼 있다. 이런 역사적 공간에서 실제로 살려면 개보수가 필연적이었을 텐데 어떻게 지금까지 형태를 온존할 수 있었을까. 해설사는 “일부 생활 공간에는 옷장을 해 넣기도 하고, 부엌이나 화장실은 현대에 맞게 고쳤다. 하지만 어떤 관사에는 옛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했다. 
 

공간마다 담아낸 이야기, 세대 아울러
도지사 관사를 나와 1호 관사로 향했다. 숫자가 붙은 ○호 관사들은 국장급 이상의 고위 관료를 위해 조성된 건물로, 각각의 컨셉을 담아 시민들을 맞이한다. 1호 관사는 ‘관사의 생애-어제 오늘 내일’을 주제로 근대도시와 주거문화 미래건축의 메시지를 담은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공간을 헐고 전시관을 만든 게 아니라 건물에 전시물을 맞췄다. 방과 방의 창틀 사이에 맞춘 안내판과 나무 장롱을 활용한 TV거치 등 아이디어가 눈에 든다.

2호 관사는 키즈 존이다. 이곳에서는 보드게임부터 민속놀이, 전자오락에 메타버스까지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언젠가 도지사 공관을 찾은 어린이와 학생들은 해설사의 안내에 “재미없다”, “오래된 집이다”며 지루함을 보였다. 하지만 2호 관사에 차려진 놀이공간에 들어서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조금 더 있고 싶다”고 말해 인솔자들을 헛웃음 짓게 했다는 것이다.
 

5호 관사는 ‘시간이 머무르는 공간’을 콘셉트로 오래된 가구와 소품들로 그 시대를 상상하게 한다. 번호를 돌리는 전화기, 타자기, 전축과 책상 등 공간과 어울리는 소품들과 함께 기념 촬영도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지어진 7호 관사는 ‘테미 살롱’이라는 이름으로 테미오래를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쉼터로 활약 중이다. 주요 관사들을 돌며 스탬프 랠리를 마치고 살롱에 가면 기념품도 받고 차와 커피도 즐길 수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현대화된 공간과 시설이라 지역주민들의 모임 장소로도 활용된다.
 

과거·현재·미래를 아우르는 성지로
테미오래에서 익산성지 구조실 일대를 떠올린다. 우리는 더 오랜 역사가 있고, 개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당시의 모습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스토리적으로도 관사촌에 버금간다.

원광대학교의 시발점인 공회당, 소태산 대종사가 주재했던 종법실과 금강원, 이리경찰서 북일주재소가 설치됐던 청하원, 이리(익산) 최대 집회소였던 대각전 등 우리 공간에는 담긴 이야기가 많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은 너무 숨어있어 일반대중에게 닿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테미오래처럼 해당 공간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게 하면 어떨까. 공회당, 대각전 등에 TV나 프로젝터를 활용해 역사 비디오 상영을 할 수도 있고, 건물과 관련된 유물·문서 등을 전시해 ‘이곳에선 이런 일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릴 수도 있겠다. 대중이 직접 성지를 체험하고 소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중앙총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더 많은 이가 익산성지를 찾았을 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를 우리만의 ‘인사이트’를 고민할 때다.


슬럼이 핫플로, 소제동 철도관사촌
대전에는 도청 관사촌 외에 관사촌이 하나 더 있다. 대전역 맞은편 ‘소제동 철도관사촌’이다.  소제호라는 호수를 메운 자리에 1920년대 들어 철도관사 마을이 형성됐고, 이곳에 철도건설을 위한 관료, 기술자,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이후 100여 채의 관사 중 40여 채만 남아 슬럼화가 진행되다가 도시재생의 바람을 타고 ‘인스타 핫플’로 부상 중인 곳이다. 남아있는 관사들은 청년 사업가들이 다양하게 재해석해 레스토랑, 카페,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오래전부터 이 자리에서 슈퍼(점방)를 운영하는 한 사장님은 “이 오래된 곳에 젊은이들이 수없이 온다.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가 있어 마을이 다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오래된 새것이 불러온 생명력을 전했다.

[2024년 2월 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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