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 자연스럽고 깊숙이 스민 ‘종교 아닌 종교’
향도(香道), 감사일기, 종교 ASMR… 일상 안정에 도움

[원불교신문=김도아 기자] 교회나 성당, 사찰이나 교당에 가지 않아도 우리는 ‘종교’를 만난다. 언어부터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우리 생각보다 더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일상 속 종교’때문이다. 

일상 다반사로 쓰이는 종교용어
우리는 불교 언어를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다. 본래 큰 가르침의 입구를 뜻하지만 이제 ‘집의 입구’를 뜻하는 말이 된 ‘현관’,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일을 뜻해 일상이 곧 선(禪)이 된다는 뜻의 ‘다반사’, 흔히 사용하는 지옥과 극락 등이 그렇다. 이판사판의 경우에는 수도에 전념하는 이판승과 절의 사무를 담당하는 사판승이 구분되지 않아 막다른 데 이르러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였는데, 종종 사자성어로 오해받는다. 

불교 용어를 기독교에서 쓰는 경우도 있다. 바로 ‘장로’다. 장로는 원래 높은 스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덕이 많고 나이가 든 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포교, 기도, 예배도 마찬가지다. 외래종교였던 천주교와 개신교가 한국에 정착할 때 자연스럽게 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맛과 향으로 기억하는 종교
언어 외에 종교문화도 어느덧 일상에 자리잡았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이 된 커피가 대표적이다. 커피는 본래 이슬람교 마호메트의 음료였고, 차는 부처의 음료였다. 또 와인은 예수의 음료였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와인은 미사주로 귀하게 여겨졌다. 현재도 와인은 대표적인 성당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맛은 무언가를 기억할 때 기억력을 높이는 감각 중 하나로, 와인을 맛보면서 포도·와인·성경 역사를 들으면 기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불교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문화는 향이다. 향은 요즘 말로 인센스라고 하는데, MZ세대 사이에서 선풍적 인기몰이 중이다. 종교의식과 마음의 정화를 위해 사용했던 향은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의 역사에서도 있을 정도로 오래된 한국 문화다. 몇년 전 종영한 예능프로 <효리네 민박>에서 가수 이효리가 향을 즐겨 피우는 모습이 공개되며 ‘향멍’이라는 신조어가 생길만큼 인센스의 인기가 높아졌다. 

향은 처음 타기 시작할 때와 연소된 후 올라오는 잔향이 다르다. 바쁜 일상을 보내는 현대인들은 천천히 타들어가는 선향을 보면서 여유를 느끼고 안정을 찾는다고 말한다. 청년들은 자신도 모르는 새 향기를 통해 호흡하며 기를 모으고 안정을 찾는 ‘향도(香道)’를 닦고 있는 셈이다. 

마음도 영양제가 필요
마음일기도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들은 감사일기, 자문자답 다이어리 등으로 매일 마음의 영양을 챙긴다. 그날과 어울리는 종교적 가르침이 담긴 한 줄을 기록하며 하루를 반조하는 스마트폰 앱이 등장했고, 여행지나 서점에서는 예쁜 디자인으로 제작된 감사일기장을 판매한다. 

실제 최고 인기를 자랑하는 감사일기장 제작업체 더 테이스티 오브 체리는 “한국은 OECD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국이며 자살률은 1위인 나라”라는 말과 함께 “우울증을 앓는 청년이 많은데, 우울증은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감사가 쌓여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감사일기장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이는 원불교 마음공부와도 맞닿은, 그동안 우리가 모른채 지나왔던 일상 속 종교의 일면이다.  

종교의 성격을 온전히 일상에 받아들이는 비교도·비신도 청년도 늘어나고 있다. 그들은 ‘들려주는’ 성경이나 불경을 틀어놓고 일상 생활을 한다. 들려주는 성경 콘텐츠를 운영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성경 읽어주는 남자’는 구독자 2.25만명을 보유한 핫한 인플루언서다. 이 채널에는 “직접 성경을 읽는 것보다 비교적 힘이 덜 들고, 더 꾸준히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을 받는다”는 피드백이 쏟아진다. 이외에 싱잉볼, 독경이나 찬양, 종소리나 낙엽쓰는 소리가 담긴 사찰의 일상소리 등의 종교 ASMR(자율감각쾌감반응) 영상이 유튜브 상위권에 랭킹돼 있다. 집중력을 키우고, 수면을 돕는 영상으로서 청년들의 불안한 심리를 언제 어디서나 위로하는 것이다. 

이런 ‘호감’이 저장될수록 청년들은 스스로 종교를 찾아갈 용기를 얻는다. 탈종교화가 가속되고 특히 2030세대의 종교 무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종교는 청년들의 일상에  스며들거나 받아들여지고 있다. 희망적이다. 그들이 무엇을 쫓는지 집중하고 살피면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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