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오성 교무
장오성 교무

[원불교신문=장오성 교무] ‘이판사판’은 막 나간다거나 사생결단이라는 의미로 본의와 다르게 부정적으로 쓰이는 말 중 하나다. 이는 ‘이판사판공사판’의 줄임말로, 이치를 밝혀 수행하는 이판승(理判僧)과 절간 살림살이를 맡은 사판승(事判僧)이 대중공사를 하니, 이판사판이 다 필요하다는 뜻이다.

도를 논하는 이가 돈이나 세상살이에 너무 밝으면 세속적으로 보이니, 그동안은 세간사에 좀 어두운 것이 도인다운 미덕으로 여겨져 왔다. 세상 물정 잘 몰라 큰소리칠 입장은 못 되지만, 세상사에 어둔 마음공부라면 보기 좋은 납도끼 같아 별 쓸모가 없다. 
혼자 산속에 들어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을 거면 몰라도, 인간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앞으로는 일도 잘하고 이치도 밝고, 이치에 근원해 돈도 잘 벌어야 한다. 마음공부의 목적은 생활 속에서 불법을 잘 활용해 여기저기서 많이 찾는 아주 유용한 사람이 되는 데 있다. 

무지한 부자도, 가난한 도인도 다 반쪽이다. 사람 속에 사는 이상, 돈도 의식주도 있게 사는 편이 없이 사는 것보다 좋다. 이치도 훤히 밝은데 세상일도 능해 지혜와 복을 함께 넉넉히 갖추면, 양면에 걸림 없이 보은 잘하고 살 수 있으니 더없이 좋은 일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세간의 일에도 출세간 이치에도 다 밝은 이가 마음공부 잘~ 하는 사람이다.

물질문명이 발달될수록, 근본적인 마음공부 없는 육근 사용은, 심신 간 에너지를 다 고갈시켜 삶을 고되고 힘들게 만든다. 반대로, 도에만 관심 갖고 세상 돌아가는 일에 너무 어두워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하면, 세상에서 도태돼 자신도 답답하고 주변에서도 한심하게 여기게 된다.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세간의 일에도 출세간 이치에도
다 밝은 이가
마음공부 잘하는 사람.

세상을 잘 사는 이는 영육쌍전(靈肉雙全)으로 몸과 마음을 잘 돌봐 두루 균형을 유지한다. 진리를 깨달아 정신에 수양과 연구와 취사의 힘을 항상 길러야 마음에 괴로움 없는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마음 실력을 잘 활용해 육신의 건강과 함께, 물질과 의식주도 능히 누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단, 여기서의 핵심은 삶의 근본이 되는 법신불, 성품을 떠나지 않은 채 그것들을 잘하는 것이다.

인간 삶에서 떠날 수 없는 시비이해는 그 답을 대소유무에서 찾아야 한다. 대소유무는 진리 전체를 표현한 말이라, 사실 진리를 깨닫지 않고서는 그 경지를 알 수 없는 어려운 말이다. 대략적으로 설명하면, 우주 만물의 근원이 되는 본원 자리를 대(大)라 하고, 대(大)를 구성하는 우주 만물 각각을 소(小)라 한다. 대와 소는 나눠진 것이 아니라 한 몸인 법신불이다. 그 한 몸인 법신불이 우주 만물을 성·주·괴·공 생로병사 춘하추동 생·주·이·멸 인과보응으로 변화시키며 운영하는 것을 유무(有無)라 한다. 대소유무는 진리, 곧 하나인 성품 자리를 말한다. 

마음공부 잘하는 이들은 진리인 대소유무에 비춰 시비와 이해를 판단하고, 일 당할 때마다 잘 적용해 실제 좋은 효과를 낸다. 진리를 깨치지 않은 이들이 내가 옳다거나 이것이 이로운 것이라고 하는 일체의 판단은, 내 입장에서 옳거나 이롭다고 여길 뿐, 정확한 시비이해가 아니다. 같은 것을 두고 상대는 다른 시비이해를 말할 것이니, 늘 다툼과 승패가 생겨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다. 항상 너와 내가 하나인 자리에 비춰 시비이해를 판단할 때, 수월하고 시원한 답이 나오고 착심이 사라져 늘 편안하다. 

후천시대의 활불 도인은, 진리도 세상사도, 이치도 일도 다 겸한 이사병행(理事竝行)공부로, 복과 지혜를 두루 갖춰 세상에 널리 활용하며 산다. 그러니 우리도 이제부터 이판사판이다!

/변산원광선원

[2024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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