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김혜연 활동가] 설 연휴 이후 골목은 쓰레기들의 세상이었다. 평소보다 더 터질 듯 존재감을 드러내는 쓰레기들에 궁금함이 밀려들어 뭔가를 찾는 척하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기름때가 덜 빠진 배달 음식 용기부터 마트 포장재, 온갖 화장품통, 신문이나 찢긴 복권 종이, 기저귀 뭉치 등이 같이 또는 따로 봉지 안에 들어있었다. 각자의 생활이 남긴 쓰레기는 ‘할 말’이 많아 보였다.

2021년 국민환경의식조사에 따르면, ‘쓰레기와 폐기물 처리’가 중요한 환경 문제로 미세먼지를 제치고 1위(65.7%)를 차지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이 컸다. 일회용품 사용이 늘어나면서 한 사람이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리는 생활쓰레기는 30%가 늘었고, 함께 버린 플라스틱도 75%나 늘었다.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들며 일상이 회복됐지만 우리 사회는 이미 쉬운 소비 방법을 알아버렸고, 덕분에 쓰레기는 줄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계속 소비하기 위해서는 지구가 4개나 더 필요하다는 웃지 못할 계산까지 나온다.

‘잘 버린다’고 끝이 아니다. 쓰레기를 묻으면 메탄가스가, 태우면 이산화탄소나 다이옥신 같은 독성 화학물질들이 생긴다. 지구에 사는 80억 명이 만든 쓰레기는 환경 오염을 넘어 기후위기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시 쓸 수 있다지만, 정작 쓰레기 가운데 쓸모 있는 건 별로 없고, 무엇보다 양이 너무 많다. 필리핀에는 플라스틱으로 뒤덮인 마을이 생겼고, 가나의 강가에는 강물 대신 ‘옷’이 흐른다. 이 와중에 쓰레기 처리로 돈을 버는 기업이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폐지 줍는 노인을 비롯, 국내외 쓰레기와 연결돼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대우는 몹시 열악하다. 

이에 쓰레기 문제에 직접 나서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회용품을 멀리하고 쓰레기를 덜 만드는 ‘제로 웨이스트 운동’도 점점 우리의 일상 안으로 파고들고 있다. 판매와 함께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가게는 100여 곳으로 늘었다(bit.ly/재활용수거지도). 쓰레기 종량제처럼 일정 금액을 내면 업체에서 복잡한 분리배출을 대신해 주는 서비스도 등장했다. ‘바빠서 마구잡이로 버리느니 이렇게라도 하면 죄책감이 덜 든다’는 리뷰에 마음이 묘하다.

오늘은 ‘쓰레기 버리는 날’이다. 내가 버리기 전임에도 이미 집 앞 전봇대 아래는 산처럼 쌓인 쓰레기로 포화상태다. 나름 분리배출을 열심히 했지만 묵직한 무게에 민망함이 몰려든다. 문득 ‘사고 버리는 데에 마음을 쓰고 있긴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풍성한 시대라지만 물건과의 인연은 점점 짧아진다. 그럴 바에는 살짝 말을 바꿔 ‘쓰레기만큼은 없어서도 살 수 있는 관계’라고 상상해 본다. 당장 필요 없으면 사지 않고, 아직 괜찮으면 더 사용하는 것이다. 쓰레기와의 만남을 줄여야 온 생명과 터전의 고통이 줄고, 노력도 빛을 발할 것이다.

[2024년 3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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